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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의 초상] 시조단의 테러리스트 - 윤금초 / 홍성란

문근영 2014. 2. 19. 07:30

[시인의 초상] 윤금초 / 홍성란
시조단의 테러리스트
[52호] 2011년 09월 10일 (토) 홍성란 시인
윤금초 시인은……
194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6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으로 《어초문답》 《해남나들이》 《땅끝》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와 사설시조집 《주몽의 하늘》이 있다. 시조선집으로  《네 사람의 얼굴》 《다섯 빛깔의 언어 풍경》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가 있다. 시조 창작 실기론으로 《시조 짓는 마을》과  《현대시조 쓰기》 가 있다. 정운시조문학상, 민족시가문학대상,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고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과 방일영문화재단 출판지원금을 받았다. 조선일보 편집국 기자, 주간조선 차장, 경기대 대우교수를 지냈다. 현재 사단법인 민족시사관학교 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근에 시조집 《무슨 말 꿍쳐두었니?》를 상재했다. 

 내가 시인 이름표를 단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오늘의 시조학회’가 결성된 이듬해 겨울 어느 저녁. 박시교, 유재영 선생님 등이 함께한 자리에 신입회원으로 동석한 적이 있다. 초대 회장 윤금초 선생님과 첫 대면 이후, 시조라는 한솥밥을 먹고 한동네 산다는 구실로 이런저런 모임에 자주 합류했다. 그러면서 음으로 양으로 시인으로서 자세 같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의 자세를 배웠다. 누구의 아류가 되지 않기 위해 윤금초 선생님은 그만의 독특한 시조세계를 견지해온 프로였다. 시조 하나만을 천착하는 장인정신과 무슨 일이든 독하게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프로근성. 선배 시인을 따르되, 그의 시풍을 흉내 내며 그의 시어를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자세와 태도를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금초야, 니는 시조 쪽에 호흡이 가깝다. 시조를 써봐라.

서라벌예대 2학년에 다닐 때 소설을 전공하던 그에게 박목월 교수는 시조 쓰기를 권했다. 그렇기도 했지만 그는 해남 보길도의 〈어부사시사〉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시조문학의 거장 윤선도의 후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오늘의 시조학회’ 회장직을 10년 이상 감당하면서 상징적인 혁신파 현대시조단의 수장으로 군림해온 것이다. 남들은 군림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내 생각엔 봉사다. 그렇다. 그는 우리 시대, 현대시조의 수장으로서 희생과 봉사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언제나 선봉에 서 있었다.
첫 시조집인 《어초문답》의 발문에서 사봉 장순하 선생님은 〈금초를 형성하는 몇 가지 요소〉를 이야기하며 최남선 이후 근대시조의 면모를 오늘의 현대시조로 승화시킨 1960년대의 대표주자로서 현대시조사에 끼친 ‘금초’의 공적을 찬탄했다.
  
윤금초의 시는 대체로 난해한 것으로, 시어가 생경한 것으로, 운필이 야성적인 것으로, 곱고 매끄럽고 율동적인 것만이 시조 작시법의 모범인 것처럼 인식되어 온 시조문단에 신선하고 밀도 있고 박력 있는 것으로 신풍을 일으켰다. 고루한 비평가가 무슨 소리를 하든 상관없이 윤금초가 당대에 끼친 공적은 시조사에 특기될 것이다.    

 

그뿐인가. ‘현대시조를 말할 때 가장 상징적인 시인 10명이 누군가?’ 김상옥, 정완영, 이호우, 이영도, 이병기, 조운, 윤금초, 박재삼, 이은상, 이태극이다.(《시조 21》 2011년 상반기) 현대시조사의 상징적 인물로 일곱 번째 자리에 금초가 올라와 있다.

 

고속산업화의 메카니즘 속에 기계가 인간을 마구잡이로 부려먹고 있는 사회, 최대로 팽창한 풍선의 그것처럼 호화와 빈곤이 극한에 다다른 이곳 동경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습니다.

일본 여행 중에 동경에서 사봉에게 보낸 엽서의 한 구절이다. 사봉은 이 한 문장에 금초의 시조세계를 대변하는 양대 축이 들어 있다고 본다. 하나는 휴머니즘이요, 다른 하나는 현대사회가 빚어내는 온갖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이다. 그런 저항과 비판정신의 연장선에서 금초는 ‘시조시단의 테러리스트’라 불린다. 반란과 혁명을 양쪽 어깨에 거느리고 실험과 도전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최종찬 기자의 〈문학마을〉 《뉴스피플》 2001년 3월 29일).

 

사봉이 금초를 좋아하고 인정하듯, 나도 이런 비판정신과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금초가 좋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은 나에게 ‘작은 개혁주의자’라는 별칭을 준 적이 있다. 어쨌거나,  이 금초라는 이름은 초정 김상옥이 준 것이다. 신춘문예 심사를 했던 초정이 필명으로 썼던 윤금초(尹今艸)의 이미지가 섬약해 보이니 옆구리에 칼을 하나 차라는 뜻으로 칼 도(刀)가 들어있는 처음 초(初)로 바꾸라 했단다. 그래서 본명 윤금호(尹金鎬) 선생님은 우리의 금초(今初)가 된 것이다.  

 

어떤 이는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 과묵하니 좋은 것 같지만 검은 비닐봉지 같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금초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서슴없이 말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부정정신이다. 비판정신이다. 금초의 현실파악은 저항적 기질과 어울려 금초만의 독특한 시조세계를 확립했다. 모든 예술가는 ‘저항인’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다고 사봉은 말했다. 금초는 ‘저항인’이다. 이런 저항적 기질이 건설적 미래를 위한 비판정신, 다시 말해 시조가 연상시키는 낡은 관념의 틀을 벗어버리자는 점에서 우리들의 반성과 성찰을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금초는 고백한다.
 
나는 가끔 주제가 구체적으로 소화되지 못한 채 생경하게 겉도는 글을 발표한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소화불량의 주제는 결국 백화점식 언어의 나열, 부자연의 극치인 오버액션, 우편엽서 같은 풍광의 묘사, 과장되어 겉도는 배경 묘사 같은 결과를 낳는 것(《시조시학》, 2011년 봄).

 

이렇게 자기 전복적인 반성과 성찰을 내보이는 것은 얼마만 한 용기를 가져야 할 수 있는 말일까. 이경철 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잘 아는 금초, 시조단의 테러리스트답게 윤금초 선생님은 현대시조의 지평을 넓히려 사설시조와 옴니버스시조 그리고 최근 소위 ‘패러디시조’를 실험하며 시조의 사설 혹은 서사와 시어의 입말 혹은 음상에 공을 들여왔다(〈현대시의 혼돈과 시조의 항심〉, 《유심》, 2011년 7/8월호). 이 대목에서 선생님의 단시조 한 편이 떠오른다.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윤금초 〈천일염〉 전문

 

그렇다. 그는 절명시 쓰듯 근작을 발표하고 있다. 온갖 실험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천일염〉을 노래하고 〈능소야, 능소〉를 노래한다.

 

속울음
붉디붉게 퍼 올리는
능소(凌?)야,
능소

 

애닳게 잉잉거리는
호박벌
늦은 젖 물리고

 

세상에!
눈먼 돌부처를
툭, 툭
깨운
저 능소야.


           ―윤금초 〈능소야, 능소〉 전문

 

꽃이 저녁놀빛처럼 붉디붉은 건 속울음을 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구나. 가슴 도려내는 속울음을 저는 울고 있지만 애가 닳도록 잉잉거리는 중생에게 젖을 물릴 줄 아는 능소화. 그래 눈먼 돌부처의 먹통 같은 마음까지도 깨워주는 꽃. 꽃송이가 통째로 툭, 툭 흙마당에 져내려 어쩌면 그 낙화숭어리가 부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눈먼 돌부처를 툭, 툭 깨운다고 했는지도 모를 일. 지금까지 내가 읽은 선생님의 어느 시조보다 유려하다. 과연 이경철 교수의 말대로 ‘이미지와 율격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낳은 절창’이다.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황지우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전문

 

이 시 한 구절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유독 윤금초 선생님을 생각하면 저물면서 더욱 빛나는 저녁 바다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른 찾아뵈어야겠다.   


 

홍성란 | 1989년 중앙시조백일장으로 등단. 시조집 《황진이 별곡》 《겨울 약속》 《따뜻한 슬픔》 《바람 불어 그리운 날》 시조선집 《명자꽃》 편저 《백팔번뇌》 등이 있다.

 

 

 

―『유심』(2011. 9/10)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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