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1999년 제1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문근영 2013. 12. 7. 17:42

(1999년 제1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 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받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을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 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이 많은 내가
거추장스러운 팔다리를 흔들며 간다

 

 

(수주문학상 10주년 기념 시집『산과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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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겨울숲 우화

 

       김충규

 

 

겨울숲이 뜨겁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숲 속의 좁은 길이 내 발자국을 보듬고 있다 새떼가 후루루 날며 하늘의 푸른 심줄을 당긴다 흙 속 잠들었던 벌레들이 고개를 내민 채 후후 숨을 쉰다 구겨진 햇살이 나무의 밑동을 감고 있다 숲은 고요한데 느닷없이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숲 밖으로 말발굽소리 들린다 이를 악문 비명이 찢겨져 들린다 탕, 탕,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산이 몸을 뒤척인다 하늘의 심줄을 문 새들이 뚝뚝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일제히 빈혈을 일으키며 감고 있던 어깨를 푼다 내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잔기침을 토하며 새들의 빈집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속에 갇혀있던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숲의 고요는 흩어지고 총성에 섞인 말발굽소리 날뛴다 빠르게 해 기울고 온순하던 바람이 얼굴을 벗은 채 칼을 물고 우우 숲을 미친 듯 빠져나간다 숲 속은 일순간 어두워지고 숲 밖은 차츰 아우성으로 깊어간다

 

 

(수주문학상 10주년 기념 시집『산과들』,2007)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연인M&B,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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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조롱박을 타다

 

    유종인

 

 

조롱박에 실톱을 들이댔다
덜 익은 하얀 씨앗들,
뻐드렁니처럼 햇살에 웃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갈라져 나왔다.
나를 대신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 바가지를 쓰세요
한 몸으로 그냥 썩을 몸,
갈져 제 속을 파내야
누군갈 오래도록 퍼먹일 몸!
조롱(嘲弄) 때문에 모든 걸 끝낼 순 없다.
먼저 타낸 갈색의 씨앗들
담뱃진 잔뜩 낀 이빨로 웃고 있었다

 

 

(수주문학상 10주년 기념 시집『산과들』,2007)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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