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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아침의 시 / 윤후명 - 쇠물닭의 책

문근영 2013. 11. 29. 09:20

이 아침의 시 / 윤후명

 

 

쇠물닭의 책

   -우포늪에서
 
마름 열매 까만 별처럼 물속에 가라앉은
가을 늪에 이르렀다
읽지 못하고 덮어둔 책들처럼
가을 늪은 어둡다
그러나 쇠물닭 날갯짓하던 물길은 어디엔가 있으리라고
눈을 열면 어두운 늪 속에 하늘이 열린다
어두운게 아니라 맑은 것
땅과 함께 하늘이 열린다
푸드득푸드득, 살아온 날의 소리
가을은 잎사귀를 떨구며
뿌리마다 마음을 갈무리하고 있다
뿌리마다 마음을 닦고 있다
닦은 마음이 거울이 되어 쇠물닭의 물길을 열면
읽지 못한 책들이
푸드드구드득, 날개치며 살아나
맑은 페이지를 펼친다
마름 열매 별빛에도 글자들이 매달린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는(Albert Schweitzer, 1875-1965)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라고 하였어요. 체계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부분 집합체이지요. 우리를 둘러 싼 우주가 거대한 체계라면 인간인 우리는 우주라는 체계의 작은 부분이며, 우리 주위의 사물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체계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한 알의 풀씨가 여물기 위해서는 대지의 흙과 햇빛과 바람과 비와 시간이 필요하지요. 자그만 풀씨 한 알 속에 살려고 하는 의지와 자연 순환의 모든 기록이 담겨있고, 우주 기운과  미래를 예비하는 생명이 숨 쉬고 있지요. "마름 열매"한 알 속에 바로 우주 전체가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인간인 우리는 때로 자신의 삶에 함몰되어 자연의 가르침을 듣지도 보지 못한 채 시간을 소모하게 된답니다.
 
"읽지 못하고 덮어둔 책들처럼"삶의 길들이 어둡게 덮여 있다고 느낀다면 가을 들판에 나가 보면 어떨까요? "푸드득푸드득, 살아온 날의 소리/가을은 잎사귀를 떨구며/뿌리마다 마음을 갈무리하고 있다/뿌리마다 마음을 닦고 있"는 조그만 풀씨 하나에 귀 기울여 보세요. 풀씨 하나와 내가 서로의 부분이라는 느낌이 온다면 어둡기만 하던 마음 맑아지고, 가을이 주는 삶의 전언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 교수 dsseo@shingu.ac.kr)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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