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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10) - 명징한 비극의 풍경

문근영 2013. 11. 28. 14:25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10) - 명징한 비극의 풍경

 

 

거울 속으로 사라진 나비
 
최서진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나비처럼, 거울 밖에서 나는 두렵다
암호 같은 바깥에서 모서리를 버린다
대부분의 모서리는 자기 자신 되기
자신을 버린 나는 거울 뒤에 숨는다
이곳은 비극적인 세계
 
거울 밖에서 거울 속을 앓는 밤
 
신탁처럼 도착한 편지를 읽고
상실의 자세로 하루를 견딘다
극적으로 성장하는 허공들
혁명의 나비는 다시 날지 않는다는 전언을 듣고
위태로운 허공은 깊이를 배운다
거울의 안과 밖
우리는 난해한 경계에서 단정하고 냉정하다
 
나비는 거울 속에서 기적처럼 날 수 있을까
 
맨손으로 거울을 만지면 손가락이 베이는
절단의 벽, 수락해주지 않는 거울의 내부로 잘린
손가락이 툭 떨어진다
 
나비와 손가락을 남기고 뒤돌아서는 저녁마다
잘린 손가락 마디에서 모서리가 한 뼘씩 자란다
 
 
# 한 편의 정교한 작품이 강한 자력을 띠고 다가온다. 군말 없이 직방으로 상황과 대면하는 화자는 존재의 갑각을 깨고 들어간다. 전후좌우 누추가 없고 명징하다. 투명하게 다 꿰뚫고 있으니 비극의 문양은 또렷하고, 내면 풍경의 표상 또한 선명하다.
 
세계와의 불화가 거울의 안과 밖을 대립의 공간으로 나누어 그 사이에 팽팽한 정서의 긴장이 있다. 거울 속의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이고, 반드시 가고자하는 현실 저편의 공간이다. “모서리”를 버린 화자는 비극적 세계에 있다. 자발적 선택이다. 외부의 조건 탓이 아니어서 더 아프다. 화자는 “거울 밖에서 거울 속을 앓는” 불행과 비운의 주체이다.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좌절과 절망 속에서 “편지”는 구원의 메시지로 작동한다. 그 순간 “극적으로 성장하는 허공”이 잠시 위안의 대상으로 부풀어 오르지만 혁명의 날은 다시 오지 않고 냉혹한 현실 앞에서 허공은 깊은 절망으로 떨어져 내린다. 상승과 추락의 경험은 화자로 하여금 보다 냉정한 위치에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궁극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화자는 단정과 냉정을 견지한다. 이성은 출렁이던 강물을 얼어붙게 하고, 현실의 공고한 질서와 관습 앞에서 한없이 설레던 바람도 꽁꽁 얼어붙어 우박으로 떨어진다. 욕망하는 자유인의 신체는 현실 속에서 부동의 석상이 되고, 신체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변전의 욕구는 좌절된다.
 
거울 속 나비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 앞에 세워놓고 맛을 보는 것. 그러나 거울은 화자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는 잔혹한 당신인 것.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무정의 절벽인 것. 차가운 거울의 절벽 아래로 잘린 손가락이 떨어지는 순간 꿈과 신체는 훼절되고, 쓸쓸히 돌아서는 누군가의 그림자는 사뭇 춥고 시린 것이다. 그 시간은 길고 적막할 것이지만 그리고 낙망과 좌절의 잔인한 상흔은 몸 곳곳에 화인으로 남아 매 순간 욱신거릴 것이지만 처연함의 시간을 독약처럼 견디며 시의 화자는 걷는 것이다. 그리하여 손가락과 마음을 잘라먹은 불임의 시간을 바라보며 당신의 계절은 서서히 무감해지고, “손가락 마디에서 모서리가 한 뼘씩” 자라는 환상으로 생의 발바닥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뼘씩 자라는 “모서리”가 또 다른 설렘과 그리움을 예비하고 있는 뇌관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는지. 그걸 깨닫는 순간부터 세계는 지상의 뼈와 살로 새로운 호흡을 시작하고 당신의 낮과 밤을 가장 뜨겁게 끌어안을 것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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