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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의 시 이렇게 쓴다] 생손 앓듯 따끔거리고 애린 몸으로 똬리 트는 시라는 그대 - 이애리 시인

문근영 2013. 11. 22. 07:52

 

  [나의 시 이렇게 쓴다]

"생손 앓듯 따끔거리고 애린 몸으로 똬리 트는 시라는 그대"

이 애 리(시인)

 

사랑하는 그대? 당신을 떠올려 보면 생손 앓듯이 가슴이 따끔거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느닷없이 애리기도 한, 그래서 당신은 더더욱 유현하고도 제 온몸을 핥기도 하고 똬리를 틀지요. ! 그대에 대한 정의를 "허기진 사람에게만 약동하는 그 무엇"이라고 -박형준 시인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동선 열차가 지나는 묵호역이 내려다 뵈는 동해안 바닷가 마을, 졸린 눈을 비비며, 2012 런던 올림픽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귀한 동메달을 따는 그 감동과 환희의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제 맘 한구석에는 " 나의 시 이렇게 쓴다."라는 주제의 '시하늘' 원고청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위 문단에서 잘나가는 시인도 아니고, 남들처럼 시집을 여러 권 낸 것도 아니며, 그저 2011년도 "하슬라역"이라는 첫 시집을 부끄럽게 세상에 덩그러니 던졌을 뿐, 밥벌이를 핑계 삼아 요즘 그대에게 데면데면 합니다.

그대는 제게 어느 날 문득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오겠노라고 기별까지 하고서도 오지 않는 것인지, 못 오는 것인지, 오다가 중간에 발병이 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지요. 그댈 맞이하기 위해 쿵광 대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기뻐한 적도 있고, 간혹 마음이 애린 것이 해연풍처럼 연연히 불어오는 그리움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맹목적으로 그대를 한없이 짝사랑하기도 했지요. 당신을 생각하면, 늘 저는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강원도 두메산골 두타산 백복령 자락에서 아버지는 한문학을 한 선비로, 시인으로 한 세상 살다가 가셨지요. 어릴 적 아버지 무릎에서 저는 한글을 배웠고, 아버지의 퉁소 부는 소리와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아버지가 손수 지은 시조를 흥얼대곤 했어요. 그렇게 제가 오신 당신이 바로 '두타산입술대고둥아재비달팽이'라는 시네요.

 

내 별호가 혹은 호명되는 이름이 이렇게 길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앞으로 내 이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근황과 이름을 작명해서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는 두타산 정상에 사는 얼레지에게만 슬쩍 귀띔했을 뿐 삼화동주민센터에 출생신고는 별달리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타산 무릉계곡 근처 선녀탕을 지나 용추폭포라는 작명가 집에서 한나절 고민해 지어 온 내 이름, 두타산청옥산이기령무릉계곡소비천골 신흥리입술대고둥아재비달팽이, 라고

―「두타산입술대고둥아재비달팽이전문

아버지는 제 시를 가장 많이 읽으며, 행복해 하셨던 제 시의 첫 번째 독자였어요. 시 고샅에서 쭈뼛거리던 세월동안, 아버지는 강원도 산하의 아름다운 고유지명과 많은 풀꽃이름, 새이름, 나무이름 등을 저에게 가르쳐 주었고, 봄이 되면 한 아름의 개나리 진달래꽃을 "연내입춘 항아리"에 꽂아주며, 제게 이른 봄마중을 하라고 일러뒀어요. 그렇게 저는 아버지로 하여금 "연내입춘 항아리"라는 시와 연애를 시작했어요.

 

그대 몸에 햇살 스며들 틈이 조금 있다면

제 맘도 구구절절 꽃편지 담아 볼게요

아직 춘설이 촘촘한 청보리 이삭도 담겠어요

가끔은 그대가 너무 보고 싶어 얼굴 거꾸로 처박고

와와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지요, 그럴 때 마다 당신

내 속을 훤히 퍼내기라도 한 것처럼

거듭거듭 메아리쳐 오는 목소리

연내입춘 항아리, 연애중 꽃항아리

―「연내입춘 항아리전문

 

제가 혹애하는 그대는 종종 부메랑처럼 저만치 떠나가곤 했어요. 그러다가 가장 절절해질 때 그대는 제게 다시 돌아오곤 했어요. 그러면 저는 마냥 그대만을 해바라기하며, 동해역에서 밤새 소주를 마시며 그댈 미워도 했지요. 영동선 열차의 기적소리를 해연풍에 실어 보내며, 당신의 그림자를 찾아 나서기도 한, 그래서 만난 당신이 바로 " 동해역에서 밤새 소주를 마시다."라는 시입니다.

 

오징어들이 벗어놓은 몸 꺼풀을

사람들은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거나하게 취한 술이 온몸 헤집으며 철썩일 즈음

열차는 동해역을 지나가고,

기적소리만 플랫폼에 울고 섰다

 

기다림에 지쳐서가 아니라,

빈 술병이 허전해서 보듬고 있다

갈증이 해무처럼 아늑해질 수 있다면

오징어똥물 뒤집어쓴대도 무슨 상관인가

―「동해역에서 밤새 소주를 마시다부분

 

소금별, 초록별 반짝이는 백복령, 대관령, 선자령, 은비령, 화비령, 설악산, 곰배령, 한계령, 청옥산, 두타산, 상월산, 오대산, 안계자니계곡, 명주목이, 새찬깐이, 서학골, 달방댐 등 이러한 이름들은 제가 나고 자란 강원도의 아름다운 지명들이지요. 그중에서도 저는 오대산을 좋아합니다. 푸른 젊은 날로 기억해요. 철도원 이녁과 오대산 월정사를 간 적 있어요. 그 아름답고 푸른 봄날, 오대산 오르는 마을 어귀에 자그마한 초등학교도 있었지요. 수목림을 오랫동안 걸었는데, 그때 거기서 당신을 제 삶의 정인으로 뜨겁게 품고 말았습니다. 그대와의 올올한 통정은, 제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대산 손단풍에게 초록이 전부였던 그 화끈거림이란" 이름으로 만난 당신입니다.

 

새들은 붉은 단풍을 원했고

생에 있어 호된 뜨거움이란

단풍잎 같은 손거울에 나를 비춰 보는 일

 

지나온 모든 안부가 궁금했을 터

사랑이 한때 위험했다면 오대산 수목림 지나

청람빛 손단풍보다 푸르렀을까

 

뭐든 푸르다는 것,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

위험할 필요도 없던 초록이 전부였던 오대산 손단풍

 

그 푸른 단풍나무 그늘 이면에는

암암리에 산안개 뭉게구름 천둥번개

별빛 이슬이 내려와 웅숭깊은 젖을 물리며

새순 키운다는 것을

―「오대산 손단풍에게 초록이 전부였던 그 화끈거림이란부분

 

제 삶 속에서 당신은 또 다른 '이애리' 라는 메타포로 자리매김 하는 걸요. 마치, 교원시험을 앞두고 독서실에서 이 여름을 보내고 있을 지현이 조카가 간직하고 있는 부적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을 앞두고 지금 이 시간에도 북평여고에서 엉덩이에 땀띠를 견디며 공부하고 있을 막내둥이 다솔이의 책가방 속에 담긴 수능 부적 같은 것, 그러고도 당신은 제가 오랫동안 눈길 가는 곳에, 마음 가는 곳에 하염없이 머물며 살 섞고 기뻐했을 터, 때로는 헛된 욕심과 욕망 때문에 무릉반석 같은 널따란 상처도 키웠고, 어떤 때에는 죽도록 사랑도 했을 이애리, 라고 호명되는 이름 속의 자연과, 사람들과의 인연이 닿아, "하슬라역 역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시라는 그대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시라는 그대의 주변에서 빈둥거리기도 하다가, 어정어정 서성이기도 하다가, 때로는 싱싱한 슬픔 한 자락 키우며, 오래도록 또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당신, 저를 많이 나무라주시고, 더 많이 아프게 해 주세요. 당신이 더욱 간절해지기를, 가을이 오고 있네요. 나의 사랑하는 그대! 꽃몸살, 가슴앓이 시여, 또 다른 내 청춘의 아픈 상처들이여!

 

2012년 가을, 동해안 바닷가 마을 묵호에서 이애리

 

 

 

―『시하늘』(2012. 가을)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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