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2) 존재의 정화 / 방생放生- 이갑수

문근영 2013. 11. 5. 18:22

 

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2)  존재의 정화
 

 

 

방생放生

이갑수

한 번이라도 오줌 누어본 이라면
실감하면서 동의하리라
내가 화장실의 안팎을 구별하여 주면
오줌은 내 몸의 안팎을 분별하여 준다
따지고 보면 그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어떤 때 나는 소변 쏟다 말고 쉬면서 잠깐
오줌붓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콜라를 부어도 막걸리를 넣어도
정수되어 말갛게 괸 오줌은
몸 속 욕망의 바위틈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무겁게 짓눌리고 시달렸는지
맨 마지막 구멍으로 헤엄쳐 와서는
나오자마자 거품 물고 하얗게 까무라친다

내가 잠깐 방뇨하면
오줌은 오래 나를 방생한다


# 삶은 눈앞에 없는 것을 갈망하고 그리워한다. 결핍이 그 동인이다. 작품에 드러나는 존재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시로 나타나는 목마름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상당수의 시편들은 눈앞의 자아를 들여다보고 결핍의 근원을 찾아 번민하고 궁구하면서 시의 문맥을 완성한다.

이갑수의 시도 예외가 아니다. 이 작품에는 ‘나’와 ‘오줌’이 대립 충돌하면서 시적 긴장을 형성한다. 두 대상의 충돌은 파괴나 부정의 국면으로 나아가지 않고 조화로운 상생의 포즈로 손을 잡는다. 편하게 읽히는 시지만 평이함과 안이함으로 기울지 않고 어느 곳에서도 긴장의 누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화자는 정서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고 결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오줌”은 단순한 배뇨 작용이 아니다. 몸의 “안팎”을 구별하여 주고 존재 성찰의 단서를 마련하여 주는 “기특한” 현상이다. 몸의 안에는 “오줌”이, 몸의 바깥에는 “나”가 있다. 두 대상은 동등한 위치에서 공생한다. 우선 “오줌”부터 보자. 화자로 인하여 몸 안으로 들어오는 일체의 것들을 정화하여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을 한다. 욕망의 부산물이지만 몸 안의 거름장치를 거쳐 체외로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단순하지가 않다. 고통과 억압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얼마나 무겁게 짓눌리고 시달렸는지”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결국 “오줌”은 시의 다른 얼굴로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이었으면 “나오자마자 거품 물고 하얗게 까무라”칠까. 오줌의 장렬한 최후로 인하여 “나”는 비로소 산다. 그 무수한 불순물을 그대로 안고 살았다면 화자의 생은 유지될 수 없는 것. 한 편의 시로 인하여 시인이 살아가듯 오줌으로 인하여 화자는 정결한 목숨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연에서 이 시는 새로운 공간으로 도약한다. 비상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난다. 끝의 절묘한 두 행이 없었다면 작품의 격은 평범한 묘사시로 전락했을 것이다. “방뇨”와 “방생”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시의 영역이 광활해진다. “나”를 방생한 오줌은 화자와의 자리바꿈을 통해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고 주체의 자리에서 작품에 광채를 더하게 된다. “오줌”의 은덕으로 “나”는 비로소 “방생”의 몸이 되어 생명의 바다에서 건강한 존재로 다시 사는 것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문화저널21'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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