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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33) 사랑의 실체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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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철성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나는 양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익숙지 못한 것들이 배를 뒤틀리게 하고 가슴을 칼로 긋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사랑이 나의 어두운 방으로 들어와 누워있는 날 문질러댔다. 앙칼진 것들이 내지르는 붉은 소름. 불쾌한 입술이 이를 앙다물었다. 나의 사랑은 날 떠나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난 호소했다. 날 떠나지 말아달라고. 거듭거듭 호소하는 나의 혀가 딱딱하게 갇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난 둘이 되어 있었다. 난 놀란 눈을 하고 날 보고 있었다. 난 놀란 나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놀란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난 무섭게도 도망치는 날 끝까지 추격하여 때려죽이고 싶었다. 어느 날 난 둘이 되어 있었다. 손이 손을 맞잡고, 입술이 입술에 포개지고, 성기가 성기에 삽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난 죽고 싶었다. 영원히,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으면 했다.
# 이 시는 크게 세 개의 내용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사랑-분리-결합과 분리가 그것이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예고도 없고 조짐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죽음과 닮은 구석이 많다. 시적 주체는 사랑에 빠져 평소와 다른 감정과 달뜬 시간의 포로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사랑은 달콤한 것만은 아니어서 자주 “가슴을 칼로 긋고 머리를 지끈거리게”하는 이상한 물질이다. 그러한 고통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것이 사랑이지만 화자는 그 사랑이 자신을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호소한다.
화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화자를 버린다. 뜨겁게 불타던 혀는 딱딱하게 굳어가고 쓸모없는 사물이 된다. 하나가 되었던 두 사람이 다시 둘로 나누어져 분리된다. 분리의 공포를 예감하고 몸부림쳤지만 화자의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 비극의 탄생이다.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화자는 스스로를 “때려죽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극렬한 자기 부정이며 주체의 분열이다. 분열된 자아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놀란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는 고백이 그것을 반증한다. 내가 나를 살해하는 행위는 결국 존재의 부정으로 이어져 이 시의 비극적 상황을 고조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은 또 다른 방향 전환을 통해 시의 영토를 확장한다. “어느 날 난 둘이 되어 있었다”와 이어지는 “손이 손을 맞잡고, 입술이 입술에 포개지고, 성기가 성기에 삽입되어 있었다”의 상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율배반이다. 그러나 이 시는 역전적 구조와 중층의 의미로 짜여져 있다. 즉 앞의 상황은 뒤의 상황 이후의 국면이다. “어느 날 난 둘이 되어 있었다”와 유사한 시행이 앞에서도 사용되었지만 둘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뒤의 행은 결합 이후에 전개된 현실이다. 화자는 사랑과 분리의 경험을 거친 존재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결합과 분리의 상황이 함께 나타난다. 두 존재가 사랑으로 결합했지만 하나가 아닌 본래의 모습 그대로 둘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이 시의 비극성이 강화된다. 영원히 하나될 수 없는 것은 존재의 숙명적 한계이다. 그 한계 앞에서 절망한 화자는 “난 죽고 싶었다. 영원히,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으면”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시 한 구절대로 사랑은 잠시 기쁘고 오랫동안 슬픈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므로 꿈꾸는 사랑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이며 환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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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기사입력: 2013/03/04 [10:05]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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