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 아침의 시 / 복효근 - 호박오가리

문근영 2013. 11. 2. 15:11

 

이 아침의 시 / 복효근

기사입력: 2013/03/11 [10:50]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서대선
호박오가리
 
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게 먹었다
벌레 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들깻물 받아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졸였다
꼬소롬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 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 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 초등학교 자연시간으로 기억된다. '물방울의 여행'이라는 내용으로, 마을 앞개울에서 졸졸졸 노래하며 흐르던 시냇물에 따스한 햇살이 놀러오면 시냇물의 겨드랑이가 가려워 지면서 물방울 마다 날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날개가 달린 물방울은 수증기가 되어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늘에서 수증기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온 세상구경을 다니는 데, 그것을 구름이라 했다. 온 세상을 다보고 난 구름이 땅 위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물을 흘리게 되면, 비가 되어 고향마을 개울로 돌아와 다시 졸졸졸 노래하며 흘러간다고 하였다. 물질의 모양은 변하여도 지구에 존재하는 질량에는 변함이 없다는 내용으로 어린 나에게 인상 깊게 각인 된 수업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신 할 수 있다니!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아프시다. 지상에서의 모습이 서서히 새로운 변신의 과정으로 들어가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인간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줄 알지만 조금만이라도 더 어머니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벌레가 반 넘게 먹었다/벌레 똥 수북하고/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여느 때 같으면 벌레 낀 "호박고지"를 버리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로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소멸해 가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나방이 된 호박고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벌레가 남긴 나머지 호박고지를 깨끗하게 씻어 조리해서 "맛있게 먹고/어머니께도 갖다 드리자/그러면/벌레랑 나눠 먹은 것도 칭찬하시며/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신을 꿈꾼다. 광물성에서 동물성으로, 때론 식물성으로, 그리곤 기화하여 공기 속에서 허공을 채우기도 하다가 지구의 중심으로 침전되어 다시 광물로 되돌아가는 순환을 지속하는 것이다. 어머니, 지금은 무엇이 되시었을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교수 dsseo@shingu.ac.kr)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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