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문학상에 박종현 시인 등 선정…향토성 잘 표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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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박재삼문학상에 이상국 시인의 시집 '뿔을 적시며'가 선정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간된 시집 가운데 박재삼 시인(1933~1997)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고 시적 서정과 서사의 형식을 넘나들며 육화해내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시인을 발굴해 문학상을 수여해온 박재삼문학상운영위원회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해 크고 깊은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정갈하게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주는 이상국의 시집 '뿔을 적시며'를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는 "향토의 서정과 서민의 삶에 뿌리내린 이 작품들은 남성적 어조의 소박한 육성을 들려주고 이 시인 특유의 진솔한 시세계를 형상화하여, 친숙하게 읽히고 폭넓은 공감을 자아낸다"고 이상국 시인의 시를 평가했다.
심사위원 이시영(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박재삼이 그러했듯 이상국은 다함없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곳곳을 어루만지면서 돌연 그것들에 유리공처럼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어 온몸이 환해지며 그윽한 그만의 한 세계를 창조했다"고 밝혔다.
또 심사위원 남송우(문학평론가)부산문화재단 이사장는 "이상국 시인의 시적성과는 결코 화려한 시문법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일상의 소박한 삶의 결들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의 담백성은 삶의 진정성에 쉽게 공감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상국 시인은 "선배시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으며 언젠가 제 노래도 우리 땅 어느 한 자락을 울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한편 박재삼문학상운영위원회는 경남지역 시인을 대상으로 한 박재삼사천문학상에 박종현 시인의 '거미줄'외 2편을, 우수작으로 이이길 시인과 김용권 시인을 선정했다.
ㅡ 출처 : 경남도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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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가을
이상국
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나라 붉은 메밀대궁에는
흙의 피가 묻어있다
지구도 흙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을이다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이상국
면에서 심은 코스모스 길로
젊은 여자들이 달리기를 한다
그들이 지나가면 그리운 냄새가 난다
마가목 붉은 열매들이 따라가보지만
올해도 세월은 그들을 넘어간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여름이 또 가고 나니까
민박집 간판처럼 허술하게
떠내려가다 걸린 나무등걸처럼
우두커니 그냥 있었다
이 촌구석에서
이 좋은 가을에
나는 정말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여러 번 일러줘도
나무들은 물 버리느라 바쁘고
동네 개들도 본 체 만 체다
저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
나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소주 같은 햇빛을 사발때기로 마시며
코스모스 길을 어슬렁거린다
산그늘
이상국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틈
이상국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틈
소나무숲에는
이 상 국
소나무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숲에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 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진다
소나무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나
저렇게 먼 데만 바라보겠는가
ㅡ시집 『뿔을 적시며』(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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