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의 좋은 시 읽기(149) 회상과 연민
큰언니
최휘
그녀는 복숭아밭에서 태어났네
복숭아나무 이파리와 이파리 사이엔 언제나 그녀가 있었네
머리에 하얗게 익은 수건을 둘러썼네
봉지 찢고 나온 맨얼굴이 탐스럽게 그을렀네
달이 뽀얀 밤이었네
복숭아나무 아래로 그림자 두 개가 뒤엉켰네
나직한 남녀 목소리가 그늘 속에 짙게 고였네
툭, 툭 여기저기 떨어진 복숭아들 하얀 곰팡이를 피워 올렸네
이튿날 과수원 안에는 라디오가 볼륨을 높였네
저편 검불 속에선 허연 김이 푹푹 솟아오르고
서울로 갈 차표 같은 그녀의 연애가 끝나고
겨드랑이가 목덜미가 미치도록 가려웠네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면 진초록 이파리들 꿈틀대고
복숭아들은 터질 듯 매달려 있었네
사다리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온전히 돌고 나서야
다음 복숭아나무로 옮겨갈 수 있었네
그녀, 온몸이 손이 되어 복숭아를 받아냈네
복숭아 하나 안에 한 계절이 다닥다닥 달렸네
사다리 아래로 교복 입은 동생들이 출렁출렁 지나갔네
가끔씩 하얀 수건을 벗고 제 머리카락을 만졌네
익을 대로 익어 바닥으로 떨어진 얼굴을 보았네
하늘은 파랗고 여름은 한창이었네
오후 두시의 햇살을 라면에 넣고 끓이거나 오전 열한 시는 몇 살이냐고 묻는 식의 수사는 감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낯선 감각과의 충돌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고루한 생의 질서를 근간부터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자유자재하고 능란한 언어의 마술은 감각의 힘에 기대어 빛을 발하면서 싱그러운 재미로 다가오지만 그 이상의 세계, 잠재성의 가상계까지 치고 나가지 못하면 단순한 언어 유희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시는 감각의 놀이로 그치지 않고 생의 다양한 풍경들을 수렴하고 이합집산하는 존재의 심층까지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존재의 지평을 열어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얼핏 수려한 언어 구사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달콤한 당의정 같은 순간의 매혹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입안의 헛헛함이다. 기교가 승하여 생의 내밀한 숨결을 담보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들이 갖는 한계이다.
담박하지만 애틋한 시 한 편을 읽는다. 최휘 시인의 「큰언니」는 재기발랄한 감각의 향연은 아니지만 서사가 있는 시의 풍경에 순연히 젖어들게 한다. 과수원에서 일하는 큰언니의 초상이 복숭아 열매와 연계되어 시의 정조가 증폭되고 새로운 시공을 펼쳐 보인다.
1연에서 보여주는 대상은 현재의 큰언니 모습이다. 2연에서는 과거의 큰언니의 사랑과 연애가 아련한 정조로 묘사되고, 3연에서는 다시 고달픈 일상의 큰언니 모습이 나타난다. 연애도 사랑도 사라진 메마른 삶의 풍경이다. 그러나 힘든 노동의 결실과 휴식이 4연에 제시된다.
어린 동생들은 교복을 입고 지나가고, 큰언니는 힘겨운 노동으로 일군 생명의 과원에 서 있다. 바닥에 떨어진 복숭아는 큰언니의 얼굴과 겹쳐지면서 풍요와 충일을 상징하지만 배면에는 고통과 간난의 시간이 똬리 틀고 있어 탄탄한 서정의 골격을 중의적으로 드러낸다.
큰언니에 대한 애틋한 회상과 연민을 바탕으로 최휘 시인이 그려낸 「큰언니」는 건강한 서정을 근간으로 하여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을 보여주는 시다. 이러한 시들은 쉽게 간과되기 쉽지만 우리 시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시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고뇌나 갈등도 없이 기존의 미학을 수동적으로 답습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젊은 시인들이 전범으로 삼는 몇몇 시처럼 하나의 색깔, 하나의 모양만 강조하는 것 역시 시의 궁핍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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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출처: 문화저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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