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 일박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
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
절집 기둥 기둥마다
처마 처마마다
얼금 송송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그 속에서 누가 혈거시대를 보내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개미와 벌과
또 그들의 이웃 무리가
내통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환하게 뚫려 있구나
그날 밤 누군가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털고 일어나 문을 열어 젖혔다
창문 앞 물오른 나무들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
첫날밤을 염탐하듯 하늘에
뚫어놓은 구멍,
별들이 환한 박하향을 내고 있었다
손택수 시집 [ 목련 전차 ] 中에서
6연 마지막의 세 구절,
시인은 기둥 안의 세상이 구멍 밖의 어두운 세상을 염탐하는 중이라고 한다.
별 빛은 그렇게 빛난다고 한다.
박하향을 내면서…….
어두운 구멍 안에서 지금 밝은 세상을 바라보는…….
암울한 부처의 마음이
불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구멍 속과 밖, 밝음을 어둠으로 어둠은 밝음으로
한순간에 바꾸어 놓는 시인의 시력이 놀랍다
남을 염려하는 그 슬픈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일 것이다
그 슬픈 마음이 암울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물론 저녁에 대한 단순한 묘사라고 볼 수 있지만
암튼 글은 단순치만은 않다
이러함이 화엄의 기둥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꼬마파랑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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