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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석] 국수 - [장석주] 국수

문근영 2013. 7. 24. 11:27

국수

 
백 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기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루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문장』(1941년 4월)

 

* 멕이고 : 움직이고.

* 애동 : 어린아이.

* 김치가재미 : 김치를 묻어 둔 움막.

* 은댕이 : 언저리.

* 양지귀 : 양지비른 곳의 모퉁이.

* 능달 : 응달

* 예데가리밭 : 산꼭대기 비탈밭.

* 산멍에 : 이무기

* 분틀 : 국수를 눌러 빼는 틀. 재래식에는 반죽을 넣는 분통과 그에 맞는 공이가 있어 누르면 국수 가닥이 빠져나오게 되어 있다.

* 들쿠레한 : ‘달콤한’ 보다 느낌이 큰 말

* 텁텁한 : 눈이 흐릿한.

* 둥덩 : 둔덕.

* 큰마니 : 할머니.

* 자채기 : 재채기.

* 큰아바지 : 할아버지.

* 슴슴한 : 짜지 않고 싱거운.

* 댕추가루 : 고춧가루.

* 탄수 : 식초.

* 더북한 : 수북한.

* 삿방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를 깐 방.

* 아르굴 : 아랫목.

* 살틀하니 : ‘살뜰하니’ 의 북한말.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자상하고 지극 하니.

*고담하고 : 글이나 그림 따위의 표현이 꾸밈이 없고 담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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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장석주

 

 

지느러미도 깃털도 없는 나를 위해

노모가 점심 식사를 내오셨다.

직립인의 고요한 식욕에 부응하는 이것,

뼈도 근육도 없는 이것,

비늘을 가졌거나 가시를 가진 것도 아닌 이것,

두드리고 때려 단련시켰건만

물과 만나 허수히 무너지는 이것,

여럿이되 하나고

단순하되 극적인 이것,


한 끼니의 편이,

미끈거리는 촉감의 허영심,

오랜 명망과 혁명의 동지들,

가느다란 養生의 꿈들!

 

 

 

―『열린 시학』(2013. 여름)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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