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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래된 서울과 가까운 서울 - 정 지 창

문근영 2013. 7. 20. 00:32

 

제 18 호
 
오래된 서울과 가까운 서울

정 지 창 (전 영남대 독문과 교수)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 문제로 마을 노인들과 한전 측이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빚어 국회차원에서 조정에 나서고 있으나 쉽게 해결책이 마련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구 근교의 청도에서도 송전탑 문제로 마을 주민들이 당국과 대립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에 영주 댐을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격렬한 항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대체로 자살까지 불사하며 결사반대하는 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이른바 님비현상을 들먹인다. “보상금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상대대로 살아온 이곳에서 편히 살 수 있게 내버려 두라”는 할머니들의 하소연은 ‘전력 대란’이라는 언론의 호들갑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돈보다 정든 고향 땅을 지키겠다는 마을 주민들의 고집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찬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에드워드 렐프 지음, 김덕현·김현주·심승희 번역, 논형)

  고향 마을에 대한 애틋한 집착은 일반적으로 향토애나 향수라 부르지만, 지리학에서는 좀 어색하고 생소한 ‘장소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때의 장소란 고향집이나 마을, 즐겨 걷던 길과 숲, 강변, 정다운 사람들과 어울리던 카페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일 것이다. “인간의 경험 속에 자리 잡은 장소의 깊은 의미는 외부의 파괴력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장소를 지키려는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 어떤 장소를 동경하거나 향수병을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장소와 장소상실 (place and placelessness
)』 (에드워드 렐프 지음, 김덕현·김현주·심승희 번역, 논형)의 서문에서 캐나다의 인문지리학자 렐프는 이렇게 장소감을 설명한다.

  “장소감이야말로 지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강력한 감성이다. 우리는 특별한 장소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이러한 경험들이 지리학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다. 나는 장소의 혼과 장소감, 양자를 모두 훼손하는 사회적·정신적 과정들이 존재하며, 이것들이 지배하는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빈곤해진다고 믿는다. 장소와 장소감은 과학적 분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장소와 장소감은 삶의 온갖 희망과 절망, 혼란과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 철학자 하이데거는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고 주장했다. 장소를 빼앗기고 장소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의 항의는 장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숱한 경관 계획과 재개발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 채 진행된다.”(1975년판 서문)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몇 군데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고 한 말 같다. 사실 우리 할머니들에게는 ‘장소’보다는 ‘삶의 터전’이란 말이 친근하고 ‘장소감의 훼손’보다는 ‘삶의 터전에서 내쫓긴 실향민의 설움’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나처럼 고향 마을이 댐 공사로 수몰된 실향민의 경우, 그러한 상실감은 불면증, 식욕감퇴, 가슴이 뜀, 마비, 발열, 계속 집을 생각하는 증세를 보이는 향수병(노스탈지아)이라는 의학용어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향수」에서 표현된 러시아 망명객의 신경증적이고 고통스러운 비애와 비슷하고,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이라고 정지용 시인이 읊은 애틋한 안타까움의 일종이다.

  서울의 어제와 오늘: 『오래된 서울』(최종현·김창희 지음, 동하)

  나는 고향 마을의 고샅과 강변은 애틋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대학 시절부터 15년간 산 서울에는 정이 들지 않았고 특별히 다시 찾아가고 싶은 장소도 없다. 그런데 『오래된 서울』(최종현·김창희 지음, 동하)을 읽고 나니 서울이라는 도시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 모두의 고향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최교수의 평생 거처이자 연구실인 ‘통의도시연구소’가 있는 경복궁 서쪽 마을, 즉 서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여기도 삶의 숨결이 포개지고 새겨진 뜻깊은 삶의 터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 통인동에서 자란 시인 김광규의 시편들도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소꼽친구 영이가 나를 놀리려고 담벼락에 백묵으로 그렸던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과 ‘철수 바보 똥개’ 같은 낙서. “비쩍 마른 옆얼굴과 / 헐벗은 뒷모습 드러낸 채 / 종로구와 서대문구 변두리에 주저앉아 / 늘그막에 셋방살이를 하는 불쌍한 인왕산.” 그러자 불현듯 대학 시험 치르느라 처음 서울에 올라와 몇 달 동안 묵었던 누하동의 사촌 형 집과 효자동 전차 종점, 인왕산, 사직공원 등을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 책은 숱한 안내서나 답사기와는 다른 시각에서 출발한다. 즉 “장소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반드시 사람이라는 매개변수를 필요로 하며, 사람은 허공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특정한 장소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앞의 책 350쪽. 앞으로 본문 인용은 쪽수만 표기함)는 전제하에 “장소와 사람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348쪽) 다시 말해 “서울의 역사를 다루되 그것을 그저 옛날이야기의 집합체 또는 답사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역사적 실체로 본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도시와 인간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저자들의 관심사였다.”(5쪽)

  이에 따라 저자들은 고려시대의 남경에서 조선시대의 한성과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성을 거쳐 오늘날의 서울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를 통시적으로 파악하면서 당대의 시각으로 땅을 읽고 해석한다. 특히 최종현 교수가 30년 넘게 “눈이 무르도록 자료를 뒤지고 발이 부르트도록 골목을 뒤진 끝에”(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의 추천사) 고려시대의 옛길을 찾아내고 안평대군과 정선, 이인문과 김홍도의 그림들이 어떤 앵글로 어떤 의미를 담아 그려졌는가를 찾아낸 것은 그만이 가진 열정과 끈기와 공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최종현 교수의 셜록 홈즈 같은 역사 퍼즐 맞추기와 그의 조수이자 친구인 왓슨 박사 같은 김창희 기자의 유려한 문장으로 서촌 지역이 조선시대의 “경화사족(京華士族)에서 중인, 친일파, ‘모던 보이’를 거쳐 현대사의 격랑에 ‘미아’가 된 사회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꿈의 주체들과 엇갈린 입장”(앞의 추천사)이 새겨진 역사의 현장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대의 시선으로 옛 장소들을 재현하는 데는 수많은 지도와 서화, 사진뿐만 아니라 민정기 화백의 현장 복원도(復元圖)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제1부는 서울의 탄생을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온조의 위례성 도읍지를 서울의 기원으로 보아 2천년까지 서울의 역사를 올려잡거나 조선 건국과 더불어 한양이 도읍지가 된 시점을 잡아 서울 정도(定都) 6백년으로 보는 통설과는 달리, 고려 때인 1067년 남경이 설치되고 1104년 남경 행궁이 완공된 것을 근거로 도시로서의 서울의 역사가 약 9백년이라고 본다. 위례성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성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에도 도읍을 남경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고 행궁까지 지어 숙종이 행차했다는『고려사』의 기록을 근거로 서울의 기점을 조선 정도 시점보다 3백년 올려 9백년으로 잡는다. 도읍지로서의 행정 수도 서울이 아니라 도시로서의 서울을 전제로 한 셈이다. 나로서는 이런 논의보다는 저자들이 이런저런 자료들을 뒤진 끝에 당시의 지형과 시점으로 남경 행궁터를 현재의 경복궁 향원정 서쪽 언덕으로 추정하는 역사 추리 과정이 더 재미있었다.

  이러한 역사 추리는 한양 도읍에 얽힌 여러 설화, 특히 인도 승려 지공화상이 ‘삼산양수간(三山兩水間)’이라고 지목했다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삼산이란 삼각산과 관악산, 용문산을 가리키고 양수란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고려시대 개경에서 남경까지 오는 길을 역추적하여 남경역의 위치를 현재의 대광고등학교 자리로 추정하고, 종로 3가 전철역 6번 출구에서 익선동으로 빠지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고려 시대의 행궁길로 찾아내는 과정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조선시대의 서촌: 왕족과 사대부, 중인의 무대로 변천
  당대의 시각으로 복원한 서촌의 실경: 정선, 이인문, 김홍도의 걸작들

  2부 ‘꿈꾸는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서촌 이야기이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이 동네는 처음에 왕족들이 살던 곳이었다. 태종과 세종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고, 세종의 둘째 형 효령대군과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이 동네에서 살았다.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창의문 밖에 지은 그의 별장 무계정사에서 북한산의 보현봉 쪽을 바라본 경관과 일치한다는 추리는 현장 답사를 통해 이른바 당대의 시선으로 땅과 물길과 하늘을 보는 최종현식 ‘터미널 뷰’가 거둔 성과이다. 안평대군은 궁궐 쪽보다는 북한산 쪽을 바라보며 세속과 멀리하려 했으나 단종 폐위에 뒤이어 형인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고 서른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16세기 후반 성종 때부터 서촌에는 사대부들이 조금씩 터를 잡기 시작한다.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고 은둔한 성수침과 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죽게 만든 남곤이 이곳에 살았고, 그후에는 안동 김씨인 김상용과 김상헌 형제가 청풍계와 장동을 세거지로 삼았다. 이른바 경화사족들이 서촌의 중심세력이 된 것이다. 18세기에는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이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서촌 일대의 경관을 화폭에 담았는데. 그중에서도 「청풍계」와 「장동팔경첩」, 「삼송조망」, 「장안연우」, 「동대상춘」, 「인왕제색」같은 걸작들이 모두 서촌의 소산이다.

  18세기의 영·정조 르네상스 시대에 인왕산 기슭에는 중인 출신 지식인들이 다투어 시사(詩社)를 조직하고 이곳을 무대로 시회를 열었다. 그중에서도 송석원시사는 낮 시회와 밤 시회의 모습을 당대 최고의 화원들에게 그리도록 주문하여 이인문의 「송석원 시회」(낮)와 김홍도의 「송석원 시사 야연」(밤) 같은 걸작이 탄생했다. 이것은 중인들이 사대부 계층에 못지않은 학식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중인 지식인들이 나중에 개화파로 합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모던 보이’와 사회주의자, 신여성의 무대

  3부는 한일합방 이후의 서촌과 그곳을 거쳐 간 인물들을 다룬다. 친일파의 대표인 이완용과 윤덕영이 이곳에 대저택을 지어 만년을 편안하게 보낸 반면, 안동 김씨의 후예인 김가진은 3·1 운동을 계기로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아들 김의한과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하다 남의 땅에서 생을 마감한다. 서촌에는 또한 시인 이상과 그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이 살았고, 윤동주는 1941년 약 석 달 동안 누상동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화가인 이여성과 이쾌대 형제도 서촌에서 창작활동과 사회운동을 벌이다가 월북했다. 화가 이중섭도 1954년 몇 달 동안 이곳에서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웠다.

  해방 이후에는 김수임과 노천명, 앨리스 현 등 이화여전 출신의 신여성들이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서촌을 무대로 파란만장한 인생행로를 걷는다. 김수임은 미군 장교로부터 정보를 빼내고 애인인 이강국을 북한으로 탈출시켰다는 혐의로 처형되었으나 최근의 미국측 자료에 따르면 이강국이 오히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강국은 북한에서 박헌영 등 남로당 인사들과 함께 ‘미제의 간첩’으로 처형되었다. 노천명은 일제 말기에 몇 편의 친일시를 쓴 과오를 반성하고 자숙하다가 인공 치하에서 부역한 혐의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문인들의 탄원으로 풀려났으나 피해망상증으로 자폐적 삶을 살다가 1957년 병으로 죽었다. 앨리스 현은 상하이 임정의 간부였던 부친 현순 목사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하여 주한미군에서 근무한다. 그러다가 친북 활동 혐의로 해고되자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결국 북한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녀도 남로당 숙청 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과거의 기억을 파헤치고 복원하는 근대고고학(모더놀로지):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조이담/ 박태원 지음, 바람구두)

  서촌뿐만 아니라 서울의 어느 한 동네의 역사적 퇴적층을 파헤치면 수많은 인물과 사실들이 난마처럼 뒤엉켜 있을 것이다. 뒤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내어 당대의 시선으로 복원해내는 일은 역사학자의 안목과 식견뿐만 아니라 고고학자의 꼼꼼함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이런 자질들을 두루 갖춘『오래된 서울』의 저자들은 앞으로도 서울 곳곳의 역사와 인물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헤치고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 속편들이 기대된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오래된 과거는 박물관의 유물과 문헌을 근거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복원할 수 있지만, 얼마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는 오히려 복원이 힘들다고 아는 이들은 말한다. 전에는 수백년에 걸쳐 개발이 이루어지고 변화가 일어났다면, 요즘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상전이 벽해로 변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까운 과거의 흔적들은 개발과 재개발로 무참하게 파괴되고 말끔하게 지워지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과거, 즉 근대의 문화유산이야말로 시급히 보존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옛 궁궐이나 전각, 양반집도 중요하지만 초가집이나 일본식 적산가옥, 1930년대의 한옥, 6·25 이후의 판자촌도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특히 이른바 개화기 이후 백 년 동안에 급격하게 이루어진 총체적 변화를 고려한다면, 근대고현학(近代考現學), 또는 근대고고학(모더놀로지)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영역이 필요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는 이러한 근대고고학의 성과로 꼽을만한 역작이다. 이 책의 1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작가 박태원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1919년부터 앞의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1934년까지의 경성을 주무대로 한 실명소설이다. “이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것으로, 1930년대에 비해 자료가 빈약한 1920년대의 경성 풍경을 그려내고자 당대 유명인사들의 입을 빌리기도 하고(민족대표 33인, 유길준, 윤치호, 이광수, 이상, 윤심덕 등), 역사에 가려졌던 새로운 인물들을 발굴하여(박태원 일가 및 이덕요, 한위건, 김산〔장지락〕등), 시간과 공간이 교직하고 사실과 상상이 혼합되는 소설 형식으로 묶”(앞의 책 머리말)은 것이다. 2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원문과 함께 “등장인물들과 사건, 동선, 장소, 건물 등에 주해와 사진과 그림 등의 자료들을 별면의 각주와 별면의 박스 기사 형태로 곁들”인 것인데, 그 결과 본문보다 각주의 분량이 훨씬 더 많아졌다.

  건축과 도시계획 전공자인 조이담은 앞에서 언급한 “역사학자의 안목과 식견뿐만 아니라 고고학자의 꼼꼼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구보 마니아이다. 문학전공자들을 중심으로 ‘구보학회’가 결성되어 논문을 발표하고 학회지를 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이담의 근대고고학적 연구 성과는 나에게 일종의 경이로 느껴진다. 특히 이 책의 1부인 ‘경성 만보객. 新 박태원전’은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소설가 박태원과 그의 시대’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이다. 한 시대와 인물들을 이렇게 세밀한 필치로 재현시킨 예를 나는 보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18세기에 그려진 이인문과 김홍도의「송석원 시회」화첩이나 정조의「화성능행도」같은 기록화를 보는 듯하다. 최근 ‘한국근대문학관’ 건립계획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이 책의 성과들이 이런 일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8월 1일을 구보씨의 날로!

  소설가 구보씨는 1934년 8월 1일 낮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4시간 동안 경성 시내를 배회한다. 그 동선을 따라가면 광교 근처 청계천변의 다옥정 7번지 집에서 종로 네거리와 동대문, 남대문, 경성역, 광화문통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어오는 행로이다. ‘경성 만보객’ 구보씨의 원형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나오는 더블린 만보객 레오폴드 블룸이다. 이 소설은 알다시피 아일랜드의 수도 더불린에서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광고외판원 블룸이 시내를 거닐며 겪게 되는 일을 서술하고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율리시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데, 소설 속에서도 구보와 그의 친구인 시인 겸 신문사 사회부 기자(김기림)가 다방에서 『율리시스』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214〜216쪽).

  조이담의 주석에 따르면 더블린 시는 매년 6월 16일을 ‘블룸의 날’로 정해 소설 속 그의 행로를 따라 각종 기념행사를 한다. 그렇다면 이를 본받아 8월 1일을 ‘구보씨의 날’로 정해 관심있는 독자들과 함께 구보씨의 행로를 따라 작품 낭송과 해설을 듣고 옛날 다방에서 칼피스나 맥주를 마시며 당시 유행하던 음악(가령 엘만의 ‘발스 센티멘탈’이나 윤심덕의 ‘사의 찬가’)을 감상하고, 극장에서 당시의 영화(가령 채플린의 「황금광시대」)나 신파극(가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을 구경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조이담의 안내에 따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다보면 전보다 훨씬 풍성하고 정겨운 경성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된다. 가령 구보씨는 왜 밤새도록 시내의 술집들을 순례하지 않고 새벽 2시에 집으로 돌아가는가? 그것은 총독부령에 의해 당시의 카페 영업 마감시간이 오전 2시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성 만보객. 新 박태원전’을 통해 우리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이 한위건과 중국에서 서로 불신하며 적대했던 내막을 좀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다. 같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인 동지들을 의심하고 반목하며 일종의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신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형된 김산의 다른 한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된다. 걸핏하면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처형되는 상황에서 승산 없는 독립투쟁을 하다 보니 평상심을 유지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식민지 조선의 의기남아인 두 사람의 악연과 갈등, 그리고 경성 제일의 미녀이자 한위건의 아내인 여의사 이덕요의 안타까운 죽음은 책을 덮은 다음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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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지창
· 전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연극평론가
· 민예총 이사장
· 저서 :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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