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려는 바쁜 오후가 아기의 손에 잡혔다
오가는 발소리 배달하는 오토바이도 옴짝달싹못한다
허공을 말아 쥔 채 공기까지 부여잡고,
요람 속에 깊숙이 빠져든 아기가
놔줄 기미 보이지 않자 풀 죽은 오후가 잠잠하다
찬찬히 탐색하는 눈길을 아는지
아기입술에 꼬리가 생겼다 사라진다
살짝 벌어진 살구꽃잎에 나른한 웃음이 고여있다
이백팔십일간의 비밀을 가득 담고 깊게 잠든 손
내막이 궁금한 커다란 손이 얇고 투명한 손가락을 열면
움츠러들며 더 힘껏 말아 쥐는 아기의 손
나팔꽃처럼 오무라든 주먹이 숨겨 논
아기의 비밀을 가만가만 펴보니
저항 없이 하나씩 하나씩 열리는 아기의 손
돌돌말린 하얗고 긴 먼지가 살포시 누워있다
하얀 손수건이 조심조심 아기의 비밀을 캐내자
고스란히 따라 나오는
아기의 내력이 기록된 솜털뭉치들
천천히 한 올 한 올 닦아내면
다시 순서대로 접히는 미모사 같은 아기 손가락
작정하고 한 번 으깨보고 싶은 큼지막한 손이 꼬옥 감싸자
깨끗하고 까만 눈이 활짝열린다
그제야 정보가 누출된 것을 알았는지 맑게 웃는다
악착같이 감추지 못한 아기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공범을 밝히려 손을 뻗자
아기에게 잡혀 들통 날까 안달 난 오후가 재빠르게 달아난다
낮잠 속에서 깨어난 아기, 몸을 늘린다
시 당선소감 / 양 성 숙
“내게 시는 풀고 싶은 실타래”
무척이나 시끄러운 거리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선홍보차량, 서울시교육감재선거 홍보차량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소리들이 짜증날 때 즈음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을 확인하고 시가 당선되었다는 선명한 목소리에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순해졌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졌습니다. 웃음이 입을 넘쳐흘렀습니다.
제게 있어 시는 안 풀리는 실타래였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실타래였기 때문에 항상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오늘밤도 자판위에 공손히 두 손을 올려놓을 것 같습니다.
이 기쁨을 알리기 위해 당선 소식 듣고 제일 먼저 전화 드렸더니 젊잖게 큰소리로 축하해주신 김기택 선생님과 항상 얄미운 자극을 주신 이명우님, 그리고 시마패 문우님들, 마경덕 선생님, 숲동인님들과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준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이 즐겁고 행복한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실타래를 풀어보라고 등을 토닥거려주시고, 맘껏 제 실력을 펼쳐보라고 넓고 푸른 초원을 제게 주신 동양일보와 정연덕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양성숙
●1968년 서울 출생
●MERIX 학원 원장
●시마패·숲 동인회 회원
●서울시 동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