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스크랩] 2013년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문근영 2013. 1. 1. 13:31

계단을 번역하다 / 주명숙

 

데면거리는 마음을 슬쩍 데불고 나온 곳이었다

피해갈 수 없는 결재란처럼 층층시하다

힘주어 누르며 계단을 내려서는데

난간에 얹힌 울림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시공의 틈으로 흡입하는 시간의 발화,

탕 안의 공명 현상처럼 둥글게 살찐 소리와

찰진 여운을 머금어 주는 낮은 채도의 알파파가

심장 박동에 맞추어 알맞게 버물려졌다

난간에 기대어 비스듬해진 내리막 같은

출구

 

손잡이를 돌려 나가려는데 아래쪽에서 나는 인기척

여자가 컥, 울기 시작했다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묻은 채 토해 내는 속울음

얼결에 부록이 되어 버린 나는 덩달아 철렁,

숨소리도 끄고 곁에 앉아버렸다

건물의 부록 같은 한동안의 위안이

계단 끄트머리마다 미끄럼 방지선으로 새겨진다

수리부엉이의 날개 짓을 닮은 날숨 한 자락들

인디언 체로키족의 입담이라면

이 삶의 귀퉁이들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주었을까

 

여자의 젖은 등을 그저 바라보다가

, 소리 나게 문을 열었다

 

열렸으면서도 닫힌 공간의 은근한 압력

가슴 한켠의 추를 가만히 느끼며

그래, 여기는 비상구야!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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