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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악명의 득세 [오석홍]

문근영 2012. 12. 3. 00:51

훌륭한 행정학자께서 좋은 글을 기고해주셔서 독자들에게 보내드립니다. -관리자-


 

악명의 득세

오석홍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요즈음 이상한 언동으로 세인의 이목을 끌면서 설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째째한 기행이나 언어적 일탈로 악명을 얻은 사람들이 명사행세하면서 그렇잖아도 속시끄러운 세상을 더 심난하게 만들고 있다. 악명인(惡名人: notorieties)은 악명을 얻는 과정에서 그리고 악명을 명성처럼 누리고 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이웃을 괴롭히고 많은 사람들의 정신위생에 해독을 끼친다. 나아가서 사회적 사기를 떨어뜨린다. 그들은 나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일뿐이므로 유명한(famous) 사람들이라 불러서는 결코 안 된다. 나는 악명인들의 영향력 확산을 악명의 득세라 부르고 있다.

자고로 사람 사는 곳에는 악명인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악명인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영향권도 넓어져가고 있다. 근래에 들어 악명인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 까닭은 여러 가지일 터이다. 오도된 자유의식의 확산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가 복잡해진 탓일 수도 있다. 악명을 이용해 이끗을 챙기려는 상업주의 때문일 수도 있다. 사회적 문화의 통합성 약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일 거라 생각한다. 선진화를 이루지 못한 정치풍토의 탓도 있다. 행동자들의 불안정한 심리, 그릇된 명예욕, 타락한 윤리의식 등 개인적인 문제들이 늘어난 탓도 있다. 정보유통기술의 발달과 대중매체의 폭증은 잠재적·현재적 악명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기술적 정보화는 인간적 정보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악명인들이 비뚤어진 영웅이 되기 쉽도록 기술과 여건을 제공한다.

악명을 얻거나 혹은 누리려는 개인적 동기는 미성숙한 성격특성, 잘못 발로된 욕구, 외부의 유혹 등 수많은 요인들의 작용으로 형성될 것이다. 유명함과 악명높음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그에 대한 감수성이 희박한 성격결함 때문에 악명을 얻으려는 동기를 제어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악명인은 세인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유명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세력획득과 발언권 강화, 심지어는 도서판촉 등 이익추구를 위한 노림수로 일부러 악명을 만들어갈 수 있다. 외부세력의 부추김과 기획에 넘어가 악명을 만드는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유명해지고 싶은 허욕이 약점으로 되어 악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악명을 얻는 수단으로 동원하는 행태는 천차만별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흔히 보는 예를 몇 가지 들어볼 수 있다. 자기 직업의 테두리를 벗어나 엉뚱한 영역에 참견을 하고 소동을 피운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분란을 일으킨다. 남의 사생활을 염탐하고 폭로해 빈축을 사면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근거 없이 남을 비방하거나 시비를 건다. 시비를 걸 때는 욕설과 막말, 고소 고발을 서슴지 않는다. 황당한 비방을 하다가 고소를 당하는 것도 악명을 얻는 한 방법이다. 단박에 악명인으로 등극하는 방법은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유명인을 걸고 넘어가는 것이다. 광범하게 명망을 누리는 사람을 극렬하게 비방하면 사람들이 쳐다보게 된다는 점을 노린다. 정치인들이 가장 흔한 시비걸기의 대상이지만, 딱히 그 한계는 없다. 때로는 어린 운동선수나 배우들까지도 표적이 된다. 정치평론가 등 이른바 지식인들 가운데는 괴기스러울 만큼 극단적으로 치우친 논조를 펴 영향력을 형성한 사람들도 있다.

악명인들에게 돌아가는 악명의 손익계산 역시 복잡하다. 한때의 조롱거리가 되고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얼치기 악명인들도 있다. 일회용 유명인 행세로 효용이 다하는 사람도 있다. 남의 이용만 당하고 마는 사람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악명인들을 정적에 대한 ‘공격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잘못 건드리면 피곤하니까 짖는 개 돌아본다고 감투나 다른 이끗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악명에 기대어 지속적으로 이익을 챙기고 세력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언을 실감하게 하는 인터넷을 통해 유유상종의 추종자들을 모은 악명인들은 상당한 발언권을 향유한다. 악명인들은 유력인사로 자처한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중매체들은 시청률이나 판매부수 때문에, 또는 싼 제작비와 섭외의 용이성 때문에 악명인들을 활용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떤 악명인이 자기 매체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변해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기 매체가 하고 싶은 주장을 ‘막말꾼’들이 대신해주기를 바랄 수 있다. 스스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말한 전력이 있는 사람을 각종 매체가 초빙해 정치·사회문제를 논하게 하는 예가 드물지 않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혐오 마케팅’이라 할 수 있는 대중매체들의 행동이다. 착하고 아름다운 주제는 바닥이 났는지 사람들의 망가지는 모양을 팔아보려는 프로그램들을 늘려나가고 있다. TV출연자들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성형으로 얼굴 뜯어고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은 이제 신기할 것도 없는 일상처럼 되었다. 사람들이 가려두려 해 온 인간의 더러운 생리현상을 방송의 화제로 삼는 일도 흔해졌다. 청소년기에 저질렀던 비행을 마치 자랑거리나 되는 것처럼 떠벌리게도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연상되는 것은 인터넷을 떠도는 천한 글들이다. 특히 남을 비방·음해하는 상스러운 ‘댓글’들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 국어를 천하게 만들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우리는 오래 들어왔다. 이 말은 좋은 뜻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람은 착하고 보람 있게 살고 인간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죽은 뒤까지도 후세의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할 말이다. 이런 말뜻에 배치되는 행동들이 많아져 걱정이다. 사는 동안의 실적에 걸맞지 않은 허명을 얻고 그것을 더 부풀려 후세에 남기려고 몰염치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폐단이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명, 반사회적 목적이 있거나 반사회적 부작용을 수반하는 악명을 추구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악명에 대한 사회적 제재를 강화해 나가야한다. 무엇보다도 대중매체의 소비자들이 각성해서 악명의 입지를 없애야 한다. 선거철마다 대목을 맞는 ‘정치평론가’들을 검증해 악명인이나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추려내 퇴출하는 국가기관이 생겼으면 좋겠다.

글쓴이 /오석홍(吳錫泓)
·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 미국 University of Pittsburgh 행정학 박사
· 서울대 행정대학원 원장 역임
· 한국행정학회 회장 역임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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