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김영나 관장 진기록
아버지 故 김재원 박사도 초대 관장 맡아 25년간 헌신
"선친이 일군 일 잇게 돼 기뻐"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장이셨어요. 코흘리개 시절부터 박물관을 우리 집처럼 드나들었죠. 그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덕수궁 석조전 건물에 있었는데 덕수궁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 흘끗 박물관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전시 준비에 바빠 제가 온 것도 모르시곤 했죠. 아버지가 평생 일궈놓으신 그 일을 이제 막내딸이 잇게 됐네요."
- ▲ 김영나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집에 찾아온 외국 박물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며 박물관 비즈니스를 알게 됐다”고 했다. 가운데 작은 흑백 사진은 초대 국립박물관장이자 김 관장의 아버지인 고(故) 김재원 박사. 김 관장이 8일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내정되면서 첫‘부녀(父女) 관장’이 탄생했다. /이기원 기자 kiwiyi@chosun.com
선친인 김재원 박사는 1945년부터 1970년 퇴임할 때까지 무려 25년간 국립중앙박물관장직을 맡았다. 광복과 미 군정, 6·25전쟁 등의 열악한 시대를 살면서 박물관 유물을 지키고, 키워냈다. '박물관'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할 때였다. 김재원 박사는 또 미군이 군용막사를 짓는 과정에서 경복궁을 파헤친 사실을 알려 미 군정(軍政)으로부터 곤욕을 치른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함남 함흥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독일 뮌헨대에서 교육학·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박사는 전화를 받으면 언제나 '김재원입니다'라는 말 대신 '박물관입니다'라고 응답을 해, 친구들로부터 '아, 당신이 박물관이오?'하는 핀잔에 가까운 농담까지 들을 정도였다. 김 박사는 박물관을 통해 최순우·김원룡·안휘준과 같은 숱한 인재를 키워냈다. 안휘준 전 문화재위원장은 "애지중지 아끼시던 막내딸이 선생님 뒤를 이어 박물관을 이끌게 됐으니 지하에서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다"고 했다.
'박물관 딸' 김영나가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어린 시절 집안 가득 꽂혀 있던 미술책들 틈에서 미술사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게 김 관장의 얘기. 김 박사는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면서 '국제인(國際人)이 돼야 한다'며 막내딸을 데리고 갔다. 김 관장은 미국 물렌버그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3~05년 여성 최초로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냈다.
하지만 박물관 안팎에서는 서양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한 김 교수가 박물관의 수장이 된 데 대해 뜻밖이라는 반응이 적잖다. 언니 김리나 교수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동생이 보다 넓은 시야에서 동·서양 미술을 접목해 글로벌한 국립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