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오두막 편지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 산천초목에 가을이 내린다 ; 끝

문근영 2012. 8. 23. 11:34

법정스님의 모습

산천초목에 가을이 내린다


이제는 늦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득거린다. 풀벌레 소리가 여물어가고 밤으로는 별빛도 한층 영롱하다. 이 골짝 저 산봉우리에서 가을 기운이 번지고 있다.

요 며칠 새 눈에 띄게 숲에는 물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어떤 가지는 벌써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초록의 자리에 갈색이 늘어간다. 나무들은 말이 없지만 기온이 더 내려가면 앓던 잎들을 미련없이 우수수 떨쳐 버릴 것이다. 이게 바로 계절의 질서요, 삶의 리듬이다.

철이 바뀔 때면 내 안에서도 꿈틀꿈틀 무슨 변화의 조짐이 생기는 것 같다. 허구한 날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그 범속한 일상성에서 뛰쳐나오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가을에 나는 많은 것을 정리 정돈하고 있다. 오두막에서도 이것저것 없애고 있지만, 얼마 전에는 그전에 살던 암자에 내려가 20여 년동안 '쌓인 먼지들'을 가차없이 털어냈다. 쌓인 먼지들이란 다름이 아니라 이것저것 메모해 둔 종이와 노트와 일기장, 그리고 나라 안팎에서 찍은 사진들을 말한다. 그것들을 필름과 함께 죄다 불태워서 버렸다.

버릴 때는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언젠가는 이 몸뚱이도 버릴 거라고 생각하면 미련이나 애착이 가지 않는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살이 아닌가. 현재의 나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없어도 좋을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버리고 또 버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그 인생의 내용이고 알맹이가 될 것이다.

나무들은 가을이면 걸쳤던 옷을 훨훨 벗어버린다. 그래서 그 자리에 새옷이 돋아난다. 이런 나무들처럼 너절한 허섭쓰레기들을 아낌없이 치워버리고 나면 그 자리에, 텅 빈 그 자리에 비로소 맑은 기운이 감돈다. 이 맑은 기운이 오늘의 나를 새롭게 한다.


불타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버림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그대들 수행자에게 항상 말해 왔다. 내 설법을 '뗏목의 비유'로 아는 사람은 법도 버려야 할 터인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느냐"라고

이 말은 부처의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니 밖에는 더 말할 게 무엇이겠느냐는 것.

이 뗏목의 비유는 근본 경전인 <중아함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길을 가던 사람이 도중에 큰 강물을 만났다. 이쪽 기슭은 위험하고 무서운데, 강 건너 저쪽은 평화로워 두려움이 없다. 강을 건널 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이때 길을 가던 사람은 나무와 가지, 풀과 넝쿨을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뗏목은 길을 가던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강을 건널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이 뗏목을 머리에 이든지 어깨에 메든지 하고 가야겠다.'

그가 이와 같이 한다면 과연 그 뗏목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이겠는가?"

종교의 가르침은 온갖 모순과 갈등으로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뇌의 강을 건너게 하는 방편이요, 수단이다. 강을 건너 걱정과 근심이 사라졌다면 그 '뗏목'은 버려야 한다. 종교적인 가르침이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말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황이나 사정이 바뀐다면 그 가르침은 쓸모가 없다.

'법(진리)도 버려야 할 터인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이런 가르침 앞에서, 지금 당장 쓰지도 않는 물건들, 그 시효가 이미 지나간 물건들을 아까워하면서 움켜쥐고 있음은 끈질긴 애착이요, 집착이다. 이 애착과 집착이 짐이 되어 우리 삶에 맑은 기운을 가로막는다.

나는 중이 되어 절에 살면서 이런 버림의 짓거리를 수없이 되풀이해 왔다. 이런 행위는 풋중 시절 선배인 노스님들에게서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면서 익힌 그 은덕이다. 좋은 선배란 후배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배 자신의 삶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은 버림의 정진(듣기 좋게 말해서)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쳐지고 맥이 빠진다. 더 물을 것도 없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속물로 전락되고 말았을 것이다. 거죽은 수행자이지만 그 생각이며 행동거지가 세상 사람들보다 몇 갑절 더 속물인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행자는 한평생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바쳐야 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의 인생은 이미 녹슬어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녹은 어디서 생기는가. 물론 쇠에서 생긴다. 쇠에서 생긴 녹이 쇠 자체를 못 쓰게 만든다.

일상적인 타성과 게으름을 녹에 비유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투철한 각성과 분발을 통해 녹은 제거된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 삶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고맙다. 산천초목에 가을이 내리고 있다. 이 가을에 당신은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 부디 좋은 이삭 거두기를.

1999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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