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오두막 편지 (4) 눈고장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나다 - 바보의 깨달음

문근영 2012. 8. 11. 01:04

법정스님의 모습

바보의 깨달음


전통적인 승가의 풍습에 따르면, 여름철 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음력 7월 15일) 수행승들은 안거중에 자신이 범한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하면서 용서를 비는 의식을 행한다. 이를 자자自恣라고 한다. 그래서 안거가 끝나는 해젯날을 일명 자자일自恣日이라고도 한다.

각자 자발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서 '만약 제 행동과 말에 비난을 살 만한 점이 있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라고 청한다. 대중에서 아무 말이 없이 잠잠하면 허물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어떤 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의 의식으로 희미해졌지만, 이것은 청정한 승가의 아름다운 풍습이다. 아무 탈 없이 안거를 무사히 마치면 법의 나이, 곧 수행자의 나이가 한 살 보태진다. 수행자에게 육신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이 법의 나이에 의해서 서열이 정해진다.

지나온 석 달을 되돌아보니 이렇다 하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이 공연히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면서 지낸 것 같다.

거죽은 머리 깎고 먹물 옷 걸치고 부처님의 출가 제자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과연 내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신의와 예절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승의 말과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를 때 그 스승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스승 또한 제자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상호간에 신뢰가 없으면 참다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부처님의 생존시 제자들은 모두가 뛰어난 사람들로 이해되기 쉽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요즘이나 마찬가지로 말썽만 부리던 무리들도 있었고 지능이 수준 이하인 제자도 있었다.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그 바탕이 순박하고 진실해야 한다. 이해타산을 따지는 영리한 사람보다는 우둔하더라도 순박하고 진실한 사람을 수행자가 될 '그릇'으로 여긴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출라판타카周利槃特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요즘말로 하자면 철저히 돌대가리여서 넉 달이 걸려서도 게송 한 구절을 외우지 못했다. 그의 형인 마하판타카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찍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었다. 그래서 아우를 출가시켰지만 너무나 우둔한 아우는 형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형은 온 힘을 기울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우를 가르쳤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스님들도 그의 동생을 경멸하고 조롱하면서 놀림감으로 삼았다.

어느 날 형은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아우에게 "너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승원 밖으로 내쫓았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형밖에 없던 그가 그 형으로부터 추방당한 것이다. 쫓겨난 아우는 풀이 죽어 승원 밖에 있는 남의 처마 밑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부처님이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손을 잡고 승원 안으로 데려가셨다.

"출라판타카야,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나는 따라 출가했으니 내 곁에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그에게 수건을 하나 주면서 그것으로 남의 신발을 닦아주라고 일렀다.

"너는 이제 머리 아프게 게송 같은 걸 외울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수건으로 남들의 신발을 깨끗이 닦는 일에 전념하여라."

어떤 경전에는 수건 대신 비를 주면서 마당을 쓸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의 수행자들은 신발이 없이 맨발로 다녔기 때문이다.


부처님으로부터 남의 신발을 깨끗이 닦는 일에 전념하라는 가르침을 들은 후부터 그는 아무런 잡념 없이 부지런히 신발만을 닦았다. 여기에서 그는 문득 깨닫게 된다. '사람의 마음처럼 더러워지기 쉬운 것은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맑히는 일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아무런 잡념 없이 정성을 다해 남의 더러운 신발을 닦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이 정화된 것이다.

<테라카타 長老偈經>에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이를 깊이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최상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았다.

나는 마침내 전생 일을 깨달았다.

천안天眼을 얻었다.

세 가지 명지明知를 체득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현되었다.


그는 깨달음의 환희를 누리면서 망고나무 숲속에 앉아 있었다. 부처님은 시자를 보내어 공양시간이 됐음을 알려 주었다.

그에게는 신통력이 생겨 공중으로 뛰어올라 스승 곁에 이르렀다. 스승의 발에 예배드린 뒤 한쪽에 가서 앉았다. 스승은 곧 그의 깨달음을 인정하셨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이와 같이 단순하다. 기억력이 모자란 사람은 경전의 내용을 머리에 담으려고 애쓸게 아니라, 단순한 일에 일념으로 몰입하면 마침내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영리함은 도리어 장애가 된다. 그 영리함 때문에 그는 한 곳에 몰입을 못한다.

깨달음은 수행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일념으로 매진하면 그 일을 통해서 지혜의 눈이 열려 근원에 도달할 수 있다.

'바보 돌대가리'인 한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른 그의 순박하고 진실한 마음이 곧 도의 터전道場이라고 한 것이다.

1999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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