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처럼 떠도는 존재들
금년 부처님 오시는 날은 파리에 있는 길상사에서 지냈다. 몇 해째 등이 달리지 않는 오두막에서 혼자서 조촐히 보내고 했는데, 올해는 몇 군데 말 빚을 갚기 위해 밖에 나가 지냈다.
절이 처음 세워질 무렵의 낯익은 얼굴은 여남은 밖에 안 보이고, 대개가 새로운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학생과 상사직원, 외교관 가족과 현지에 정착한 교민들로 신도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 길상사는 이제 절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초창기에는 주관하는 스님이 없어 들랑날랑하는 나그네들로 어설펐는데, 이제는 착실하게 주관하는 스님이 있고 몇몇 신도들의 꾸준한 보살핌으로 절에 훈김이 돌았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참례하기 위해 먼 곳에 사는 교민들까지 찾아드는 걸 보면서, 신앙의 힘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열두 시간이나 걸려 찾아온 부부 불자가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 절이 길상사인데 다 아무개 스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고 했다. 그분들은 그날 밤 9시, 다시 열두 시간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스물두 시간이나 열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30년 남짓 외국에서 산다는 그분은 모국어를 잊지 않고 있었다. 벨기에서도 부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왔었다.
친부모의 슬하를 떠나 양부모 밑에서 살고 있는 입양아 10여 명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프랑스에만 1만 5천 명 정도의 한국인 입양아가 있다고 한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초파일이라고 멀리서 절을 찾아온 이런 분들의 마음이 단순히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해서 만은 아닐 것 같았다. 이분들에게 수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찾아들게 한 그 힘이 무엇일까 하고 나는 여행 중에도 줄곧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신앙심에서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어떤 열기 때문이다. 그것을 편리한 호칭으로 '한국혼'이라고 불러도 좋고 혹은 '김치의 기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줄곧 외국에서만 살아 김치 냄새라면 질색을 하던 우리 2세가 요즘에는 국수에 김치를 송송 썰어 비벼 먹는 비빔국수를 좋아하게 됐다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얼굴은 멀쩡한 한국 사람인데 우리말은 전혀 할 줄 모르는 그날의 입양아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김치를 맛있게 먹는 이것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피와 살과 뼈의 일부가 이 강산에서 자란 채소를 발효시켜 만든 그런 음식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살건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날 그 입양아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나는 종래 입양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실 수 있었다. 함께 온 프랑스인 아버지와 유학생 불자의 통역으로 그들과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가졌다. 남녀 합해서 10여 명인데 그 중 일곱 사람은 우리와 똑같은 얼굴 모습이고 나머지 서넛은 눈빛부터 타국인 얼굴이었다. 연령층으로는 대개 20대인데,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다.
만약 그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현재와 같은 밝은 표정을 지닐 수 있었을까 싶었다. 얼굴 모습이 생판 다른 아이들이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면 이웃의 눈총 속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은 뻔하다. 그리고 교육인들 제대로 받았을 것인가.
물론 그들의 겉에 나타난 얼굴 모습만을 보고 행, 불행을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다행한 것은 어둡지 않은 밝은 표정을 통해서 현재 그들의 삶이 피어나고 있음이다.
원주 스님이 미리 준비한 단주를 하나씩 손목에 걸어주었더니 다들 좋아하고, 내가 가지고 간 우리나라 절 풍경을 담은 그림 엽서를 몇 장씩 주자 아주 반겨하면서 다들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절 마당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했었는데, 언제 어떻게들 익혔는지 셔터를 누르기 전에 몇 사람 입에서는 '김치이'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슨 인연에서인지 친부모와 살지 못하고 양부모를 만나 낯선 타국에서 살게 된 그들의 정상情狀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키우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보낸 그 어미의 마음 한 구석에도 늘 그늘이 져 있을 것이다.
나는 밖에 나가 낯선 거리에 서 있을 때면, 문득 이 몸을 버리고 새 몸을 받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권과 돌아올 비행기표와 몇 푼 노자만을 지닌 빈 몸으로, 일상의 소유와 관계에서 벗어나 낯선 거리를 이리저리 어정거려 보라. 인생이란 뜬구름처럼 떠도는 나그네임을, 강물처럼 끝없이 흘러가는 그런 존재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나'는 또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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