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2)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홀로 있음

문근영 2012. 7. 18. 09:57

법정스님의 모습

홀로 있음


겨울철이면 늘 하는 일과인데도 그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일만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세상살이도 철따라 비슷비슷한 되풀이인데, 막상 일에 마주치고 보면 처음 겪는 일처럼 새롭기만 하다.

도끼로 얼음장을 깨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길어다 쓴다. 그리고 그 도끼로 장작을 패서 난롯불도 지피고 아궁이에 군불도 땐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물과 나무와 불이 우리 살림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요긴한 것들로 여겨진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 즉 지수화풍地水火風, 이 네 가지로 우주가 구성되었듯이, 우리 몸도 이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는 말에 실감이 간다. 그러니 근원적으로 볼 때 이 우주와 우리들 자신이 결코 다르지 않은 한몸이다. 그래서 우리 몸을 작은 우주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내 둘레를 무너뜨리거나 더럽히면 결과적으로 내 몸을 내 자신이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런 일은 눈에 보이는 외부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고 곧 우리들 정신세계에도 똑같은 피해를 끼친다. 심신불이心身不二, 즉 마음과 몸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다.

오늘날 우리들 생활환경이 지구촌 곳곳에 기상이변을 불러일으킬 만큼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는 것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정신상태가 그만큼 정상에서 벗어나 황폐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결코 말로써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몸담아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크게 각성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을 돈으로 사서 쓰지만, 그 돈이 물에게 직접 지불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물을 끌어오거나 날라다 주는 그 대가로 지불한다. 천연의 물은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거저 베풀고 있을 뿐이다. 맑은 공기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함이 없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두루 나누어주고 있다. 이런 물과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금세기에 이르러 인간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잊어버리고 이런 천연의 은혜를 배반하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숨이 막힌다'는 말이 이제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적인 숨쉬기의 문제가 되었다. 오늘날 도시의 공기는 온갖 독성이 밴 시커먼 매연과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도 생활오수와 산업폐기물이 스며들어 마실 수 없는 물이 되었다.

4, 50년 전까지만 해도 금수강산으로 불리던 이 땅의 물과 공기를 그 누가 이렇게 죽여 놓았는가. 그 범인은 정책을 입안해서 추진하고 산업을 일으킨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오늘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소비자'로 불리는 수많은 개인이 그 소비를 통해서 직접, 간접으로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있다. 그러니 적게 쓰고 적게 버리는 일은 이 시대의 미덕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많이 쓸수록 많이 버리게 된다. 많이 버리면 당신이 지닌 어질고 착한 덕성도 함께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얼마 전에 낯모르는 회원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아무리 참선을 하려고 애써도 참선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다. 선원에서 참선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그 참선이 한결같지 않은데, 바쁘고 시끄럽고 복잡하게 얽혀 사는 세상에서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참선參禪'이란 말 자체를 한번 살펴보자.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생각함靜盧, 깊이 생각하면서 닦음思惟修을 참선이라고 흔히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마음의 고요와 평화일 것이다. 마음의 고요와 평화 없이는 가정의 화합도 이룰 수 없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도 그 어떤 일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다.

참선은, 혹은 명상은 고요와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우리들이 어떤 간절한 소원 때문에 하는 기도라는 것도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곧 명상의 세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명상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켜보는 일이다. 지켜보되 지켜보는 주체가 사라진 커다란 침묵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명상은 어떤 지식의 열쇠로도 열리지 않는다. 오직 활짝 열린 가슴으로만 명상에 이를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하늘처럼 가슴이 활짝 열려 있을 때 명상은 은연중에 찾아든다.

구체적인 방법을 들어보자. 명상은 홀로 하는 정진이다. 여럿이서 한 방에서 할지라도 '홀로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눈과 귀에 방해물이 적은 고요하고 깨끗한 방에서 가볍고 느슨한 옷으로, 방석을 깔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는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우선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 귀를 기울인다. 무슨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요를 지켜보라는 뜻이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게 되면 이때부터 당신의 생각을 지켜보아야 한다. 지켜보라는 것은 생각에 팔려다니지 말고 그 생각을 지켜보라는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소리다.

이렇게 하는 말이 사실은 부질없는 소리다. 내가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 이런 말에도 팔리지 말고,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누리도록 마음을 어디에도 붙들어 놓지 말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라.

때로는 명상 수련에 새로운 탄력을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시도해 볼 만하다. 내가 밤으로 가끔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흰 사발에 촛불을 켜두고(불빛이 직접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앉아서 녹음기에서 아주 작게 흘러나오는 명상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그윽해진다. 이런 상태로 지속하다가 음악도 계속 들으면 그것도 소음으로 쳐지게 되니까 한동안 듣다가 꺼 버리고 앉아 있으면, 저 소리 없는 소리에 귀를 모을 수 있다.

명상은 홀로 누리는 신비로운 정신세계이다. '홀로'라는 말은 어디에도 매이거나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음을 뜻한다.

이런 명상은 늘 새롭다. 이런 명상 수련을 쌓아 나가면 본래 아무 것도 없었음本來無一物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다. 따라서 적게 가지고도 얼마든지 충만하게 살 수 있다.

1997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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