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2)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명상으로 삶을 다지라

문근영 2012. 7. 17. 07:42

법정스님의 모습

명상으로 삶을 다지라


산들바람에 마타리가 피어나고 있다. 입추가 지나자 산자락 여기저기에 노란 마타리가 하늘거린다. 밭둑에서 패랭이꽃이 수줍게 피고, 개울가 층계 곁으로 늘어선 해바라기도 며칠 전부터 환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풀벌레 소리가 이제는 칙칙한 여름 것이 아니다.

이렇듯 산에는 요 며칠새 초가을 입김이 서서히 번지고 있다. 눅눅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씻어내고자, 앞뒤 창문을 활짝 열어 산 위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아들였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은 괌에서 일어난 대한 항공기 참사로 인해 무겁고 착잡하기만 하다. 그 많은 생명들이 한순간에 무참하고 억울하게 희생되고 말았으니, 그 가족과 친지들의 비통한 슬픔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슴에 멍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고가 나던 그날 밤, 나는 전에 없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날이 샌 후에도 어째서 그토록 불안한 마음이었는지 곰곰이 헤아려보았지만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 식탁에서 라디오로 정오 뉴스를 듣고서야 비로소 불안했던 그 실체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커다란 생명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사에 쫓기느라고, 자신의 한 웅덩이 속에만 가두어 놓고 그 속에서 부침한다. 그들은 끝내 넓은 강물의 넘치는 흐름 속에 합류하려고 하지 않는다.


버스와 열차와 선박 그리고 항공기와 같은 교통수단의 대형 사고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생명을 싣고 나르는 운전사와 기관사, 선장 그리고 기장은 평소에 운행 기술 뿐 아니라 정신적인 훈련도 함께 닦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스와 열차와 선박과 항공기는 순조로운 운행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고도의 주의력과 순간적인 판단과 대처 능력이 몸에 그림자처럼 따라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어디에도 얽매임 없이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할 때 저절로 평온해지고 맑고 투명해진다. 마음의 평온과 맑고 투명함 속에서 정신력이 한껏 발휘되어 고도의 주의력과 순발력과 판단력을 갖추게 된다.

명상은 그 같은 정신력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명상은 특수한 계층에서 익히는 특별한 훈련이 아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혹은 배우고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상은 우리들 삶의 일부분이다. 명상은 안팎으로 지켜보는 일이다.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와 언어와 동작, 생활습관들을 낱낱이 지켜보는 일이다.

여러가지 얽힌 일들로 인해 죽 끓듯 하는 그 생각과 생각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한다. 지켜보는 동안은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강물을 강둑 위에서 묵묵히 바라보듯이 그저 지켜볼 뿐이다.

명상은 소리없는 음악과 같다. 그것은 관찰자가 사라진 커다란 침묵이다. 그리고 명상은 연속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지나가 버린 세월이 끼여들 수 없다. 같은 초이면서도 새로 켠 촛불은 그 전의 촛불이 아닌 것처럼 어제 했던 명상은 오늘의 명상과 같은 것일 수 없다. 이와 같이 명상은 흐르는 강물처럼 늘 새롭다.

일상적인 우리들의 정신상태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살이에 얽히고 설켜 마치 흙탕물의 소용돌이와 같다.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도 이런 흙탕물 때문이다. 생각을 돌이켜 안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는 명상은 이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작업이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둘레의 사물이 환히 비친다. 본래 청정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와 같은 명상은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누구나 익혀볼 만한 일이다. 특히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기관이나 조직의 책임자들에게는 필수적인 훈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일본이나 구미 제국에서 기업 경영에 크게 활용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난기류 관계로 공기가 희박해져서 비행중인 항공기의 고도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순간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현상을 일러 '에어 포켓'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에도 그런 에어포켓은 있다. 정신적인 좌절과 무기력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때 '나는 누구인가?'하고 안으로 진지하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다. 때때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 마음은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명상하라. 그 힘으로 삶을 다지라.

1997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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