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선생추모비 충북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우륵선생추모비 비문
충주는 예로부터 국원성(國原城) 또는 예성이라고 일컬어져 왔고 한국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중앙 또는 충주라고 불리어져 자금에 이르고 있으며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문학과 가무가 성형하여
가위(可謂) 문화의 고장으로서의 전통과 면모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특히 탄금대는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유서깊은 곳이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申砬장군이 배수진으로써
왜적과 분전하다가 마침내 전세불리로 천추의 한을 남긴 채 순국성인한 전적지로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악성우륵은 가야국인으로서 왕산악선생 또는 난계 박연 선생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악성 중의 한 분이시다.
가야국이 신라 법흥왕 18년(AC532)에 멸망하자 악성우륵은 신라로 망국을 달래었고
십이악곡을 대성한 곳이 바로 이곳 탄금대의 대문산이다.
지금도 탄금대에는 우륵이 우거하였다고 믿어지는 건조물의 유지(遺趾)가 발견 되고 있다.
악성우륵이 이곳 산상에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주위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망국의 슬픔과 망향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탄주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부미청아(復美淸雅)한 음곡에 도취하여 떠날 줄을 모랐다고 한다.
오늘도 탄금대에 오르면 저 아득한 천백여년의 세파를 타고 애환(哀歡)에 젖은 가야금의 현미한 음률이 은은히
들려오는 듯 하며 변전무상한 세태의 무상함을 불현 듯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탄금대하면 돋 성악우륵을 연상하고 상징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로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탄금대하면 곧 성악 우륵을 연상하고 상징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로 우륵선생이야말로 신라 진흥왕대의 문화사를 아름답게 수 놓은 악성이시었으며
당시 이 고장 문화와 예술에 크나큰 영향을 발전을 이룩하게 하였던 수 놓은 악성이시었으며
당시 이공장 문화와 예술에 크나큰 영향과 발전을 이룩하게 하였던 것이니 오늘날까지 연면히
이어온 가야금의 전래와 함께 이곳 아름다운 유적인 탄금대를 위요(圍繞)한 산하와 더블어
영원토록 그 빛을 거하여 가리라. 이에 우리는 악성우륵선생의 위업과 넋을 기리는 마음과
이 고장 문화와 예술의 중흥을 다짐하는 뜻에서 제7회 우륵문화제에 즈음하여 동지들의 뜻을 모아 삼가 이 바를 세우노라.
서기 1977년 10월 12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충주지부장 의학박사 허제 김풍식 외 회원활동은 비를 세우고
예술원회장 문학박사 월탄 박종화는 글을 지었으며, 의학박사 서봉 김사달은 글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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