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기비(彈琴臺記碑) 충북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토성내
탄금대기(彈琴臺記)
이 비는 충주의 역사 지리 인물 그리고 자연환경을 예찬한 내용으로 충주는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으로 땅이 비옥하고 교통의 요충지로서 삼국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패권을 다투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중원소경(中原小京)을 설치 옛부터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또한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악성우륵의 가야금 율조가 면면이 이오져오고
문장가 임강수, 명필 김생과 함께 이고장 문화예술을 꽃피웠으며
임진왜란때 신립장군과 병자호란때 임경업장군의 얼이 서린 충절의 고장이다.
이와같이 과거의 영화로움을 바탕으로 인재가 모이고 문화의 원천이 될 축복받는 고장이 되기 위하여 이지역 주민의
부단한 노력과 정진이 있어야 하겠다는 교훈을 준 내용으로 높이 183 폭66 두께 34의 화강석 비석으로 1953년에 건립하였다.
前面
충의 주됨이 진역의 중에 당하여 교악이 남에 환옹하고 한수와 달천이 동과서로서 내회하여 산명야옥천미석수하며
수운이 일방으로 영을 간하여 낙에 연결하고 일방으로 경성을 거쳐 해에 달하니 진실로 남북의 인후요 교통의 요충으로서
고로부터 국원 또는 중원을 칭해옴이 도이함 아니라 바야흐로 고구려와 신라가 패를 쟁하매 마현죽령을 필선으로 하여
혈전을 중첩하고 및 신라 의를 득하매 차지로서 소경을 삼아 귀척자제와 육부몽민을 사하여 이를 실하니
이래일천년에 한결같이 경과 도와 목과 영으로서 국중에 중시되고 권석섭토가 사규중에 일물아닐이 없다.
대문산일록이 양수의 교회점에서 벽개척절하여 천인앙고의 벽이 일도분유의 창강을 포하고
주조원근의 풍물을 관령하는 자를 탄금대라 이르니 일즉 악성우륵이 일대독득의 묘조와 천고불전의 비음을 청풍유수에 탄주하여
현중의 우와 지하의 파로써 천을 격하며 신을 동하던 지라 그러나 이조오곡은 전진이 사막허가니와 후의 기대임하는 인으로 하여금
유구유신의 감개를 금치 못하게 하는 자이 별로 존함이 있다.
선조용사의 왜란에 국에 비 없고 해에 환이 닥쳐 구망의 간에 영이남이다 적의 유린에 맡겨지고 조정이 창황하여
숙장신립을 기하여 순변사로 삼아 보장한위의 책을 위비하였으니 유세의 하에 천참이 또한 용되지 못하고
적의 대중이 분로해 영을 넘어 일시에 살도하니 거의 천이요 인력이 저주할 바가 아니었다.
입이 본대 역전상승의 명장이요. 막좌에 김여물같은 이가 있으되 사 차에 지하여는 計를 도검의 상투에 구할수 없음을 알고
결연히 퇴로를 단하고 주부를 심파하고 일전필사의 배수진을 금포탄두에 포하니 의 와와전에 없고 지 옥쇄에 전함이라 뇌격전격 끝에
악권투조한 일군장졸이 혼연 순국성인의 일단으로 화하고 입은 영웅미사의 심과 천지불마의 한을 장강백파에 투고하니 어찌그리 장쾌
여 늠열함 정대광명하기 적일랑월과 같으뇨 천은 비록 정경 기승을 간하였으나 인은 넉넉히 저양의 고촉 계승코 여 있어
활적의 심담을 한율케 하였음이 모론이며 또는 돌기예봉
背面
을 차주하여 한도의 급을 소완한 공도 가몰치 못할 것이다.
대저 칠년풍마대소백전에 의기영웅으로 천고에 광요할 자는 특히 금산 진주아 함께 금포를 거할 거이요.
삼자의 중에서도 초두수범의 장거로서 금포 추하여 최를 삼지 아니치 못할 것이어늘 세에 혹 부의를 문함은
다만 영웅의 진면목을 성패이외에 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대상으로 부 모를 방하여 빙촉할진대 일구일학 다(?)영의 승지요 일외일오가 무비 회심의 명구라 화국의
문장은 강수가 탁이하고 입신의 필법은 김생이 난언하며 김윤후의 적개는 산성이 첩첩하고 최홍사의 행검은 도안이 냉냉하며
담연녹무에 예성의 古宅이 의포하고 두붕청화에 양촌의 유탑이 은약하며 우의는 포대선동에 표불하고 범번은 경비사탑하며
조운의 구참은 포곡에 역력하고 도이의 공로는 극진이 황예하니 지사흥감의 경과 소인 영탄의 정이 일대를 환하고
서로 영발하여 거의 응접에 가치 못할 것이 있다. 하물며 서풍낙일에 단월을 요지하면서 삼척용천만권서황천생아하여를
낭연일음할 때에 의기 남아의 장회가 울불하고 강혈이 비등하여 획연한 장소로 천지를 열파치 말지 아니케 하는 호흥은 진실로
부운원수롱 도휴와 조비어약춘화추월의 심상한 승개에 중의상상 발영케 하는 곳에 무궁한 광예가 忠의 내일에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충의 사ㅣ능희 자구자려하여 지령을 발양하고서 사적을 증상하기에 퇴타함이 없을 진대 충의 과긍이 昔日의 국원소경에
있을 것 아니라 도리어 당래세계에 대한 인물의 연수와 문화의 원천됨에 있을 것이요.
그러할진대 이 대에 내유하는 인의 충에 향한 탄미흠송이 더욱 가리히 못할 것이다.
월악이 아아하며 한수가 양양하며 만고청풍이 장취코 단치 아니하리니 충의 지어찌 강좌의 일오구로 말며 탄금의 대 어찌
한인의 일공극지됨에 그치랴 일편정민이 이를 타일에 험힐 것이다.
비문: 육당 최남선撰. 일중 김충현書. 군수 정희택이 세우려 계획하고 후임군수 김용은이 단기4287(1953)년 4월 立.
'문화유산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충주 탄금대 악성우륵선생추모비 (0) | 2012.07.13 |
|---|---|
| [스크랩] 충주 탄금대 신립장군순국지지 (0) | 2012.07.12 |
| [스크랩] 충주 탄금대 충혼탑 (0) | 2012.07.10 |
| [스크랩] 충주 탄금대 감자꽃 노래비 (0) | 2012.07.07 |
| [스크랩] 근심을 풀수있는 세계에서 전망이 가장좋은 "제천 정방사 해우소 (0) | 2012.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