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구르는 천둥'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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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꽃이 피고 잎이 열린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귀에 익은 새소리들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자연의 질서, 순환의 흐름은 이렇듯 어김없다.
먼지와 소음과 온갖 공해로 뒤덮인 번잡한 길거리에서, 그래도 철을 어기지 않고 꽃과 잎을 펼쳐 보이는 나무들을 보면 반갑고 기특하면서도 안스럽기 그지없다. 누가 피어나라고 재촉한 것도 아니지만 때가 되니 스스로 살아있는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 생명의 신비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있다. 겉으로 보면 깊은 잠에라도 빠져 있는 것 같지만, 뿌리와 줄기는 그 침묵 속에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한다. 흙을 의지해 서서 햇볕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받아들이고 물기를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나무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도 이 '지, 수, 화, 풍'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흙과 물과 햇볕과 공기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원천이다. 이런 고마운 은혜를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또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흙大地이 없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마실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또 햇볕을 전혀 볼 수 없고, 숨쉴 공기가 없다고 가정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 지, 수 화, 풍 즉 우리 환경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가.
잔인한 백인들에 의해서 현재는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지만, 지혜로운 영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일찍이 물질 문명에 눈이 먼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우려와 두려움을 나타내왔다.
체로키족의 추장, '구르는 천둥'은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이 한 장소를 더럽히면 그 더러움은 전체로 퍼진다. 마치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과 같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들이 대지를 너무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큰 자연재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현상은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대지 위에 세워진 많은 것들은 대지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체에 침투한 병균처럼 대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이물질들이다. 당신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머지 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로 크게 몸을 뒤흔들 것이다."
요 근래에 이르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 기상이변으로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는 자연의 재해는 무엇을 뜻하는가. 짐승들은 물 것이나 이물질이 달라붙으면 온몸을 움직여 그걸 털어 버린다. 그건 일종의 자기정화 활동이다. 커다란 생명체인 이 지구도 자정 활동의 일환으로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구르는 천둥'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보자.
"지구는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지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체다. 따라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지구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며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것은 곧 지구에게 상처를 가하는 길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뿌리를 잊어버리고 가지에만 매달린 병든 문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우주적인 눈을 지닌 사람만이 이런 경고에 공감한다.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움튼다. 인디언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위대한 정령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위대한 정령이란 무엇인가. 풀이나 바위나 나무 또는 물과 바람 등 세상 만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 그 자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의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문명인들이라고 자처하는 현재의 우리들 삶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비정하고 냉혹한 일들을 경쟁이란 논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무한 경쟁 시대'니 '일류가 아니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주장의 배후에는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파괴적인 폭력이 잠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제일주의에 도취된 오늘의 우리들은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자연의 방식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요즘 같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삶의 기본적인 진리는 이웃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 뿐 아니라 온갖 형태의 생명이 포함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
개체와 전체의 관계는 조화와 균형으로 이루어질 때 가장 바람직하다. 이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거기 이변이 일어난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조화와 균형이 무너져 오늘날의 지구는 온갖 환경 재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듭거듭 흙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물에 대해서, 따뜻한 햇볕에 대해서, 그리고 공기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은덕으로 숨을 쉬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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