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공주)

문근영 2012. 6. 28. 08:01

 대문간채   정면 7칸으로 구성하고 양끝에서 후면으로 2칸씩을 덧붙여 전체적으로 凹형 평면문간채이다.
 

  빛바랜 홍살 삼지창

 

  대문간채에 달린 2칸 방

 

  石坡宮이라 찍혀있는데 석파 이하응 흥선대원군의 글씨련가 ???

 

  화방벽 및 둘레의 담장   와편으로 수(壽), 복(福), 강(康), 녕(寧), 길(吉), 희(喜) 등의 문자와 무늬

 

  중문채 정면 5칸

  중문간채 안쪽에는 넓은 마당을 조성하고 중앙부에 신도(神道)를 설치하였다.

 

  중문간채의 중앙칸 판문 신장상(神將像)

 

  중악단  정면 3칸, 측면3칸

 

  중악단 현판. 조선 高宗때 문신 이중하 {(李重夏 1846∼1917)  1891(辛卯) 書  

                                            궁내부특진관.규장각제학}. 충청 암행어사 . 대구부관찰사.평안도 관찰사.

  중악단내의 懸板膽文.  임진1892년書

 

  중악단 용마루

 

  추녀마루 위 7개씩의 잡상.    잡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 서유기의 인물들과 토신들.

 

   공포   외 3출목, 내4출목

  측면과 후면의 판벽

 

 중악단 중앙후면에는 벽에 감실을 설치하고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봉안하였다.

 

  내벽 판벽화

  판벽화.  천녀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포간 판벽화. 동자가 공양물을 들고 무릎을 꿇고 길조(吉鳥)의 등에 올라타고 천상에서 내려오는 모습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보물 제1293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산 8

궁궐양식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왕실 산신제단으로 그 가치가 높아 1999년 보물 제1293호로 지정되었다. |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사당)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
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寺記에 의하면 이태조가 등극하기 전에는 명산을 두루 다니며 기도를 하여오다가 조선을 개국하고 즉위 3년(1394)에 무학선사의 선몽에
의하여 계룡산신을 모시는 제단을 성역화하고 그후에 누각을 건립하여 대대로 산신기도를 올리던 곳으로 고종 16년(1879) 명성황후의
명으로 단주화상이 중수하여 고종왕후도 친히 이곳에 와서 기도를 올린 곳이라 전해진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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