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암 선효문 任午
성모암 대웅전 ( 불기 2550년 석탄일 이후 현 대웅전을 뜯어내고 신축 불사 예정이라고 ! )
회주스님의 법문을 ~ !
주련 震默大師의 글
道傳寂寞三更月(도전적막삼경월) : 도를 위한 마음은 삼경의 마음처럼 적막하기만 하다.
愁送江山萬里風(수송강산만리풍) : 근심, 걱정, 번뇌의 마음은 만리 밖으로 날리어 보낸다.
주련 法隱스님의 글
聖母宮殿香雲開(성모궁전향운개) : 성모궁전의 향내음은 구름따라 만리에 퍼지고
靑雲衲子雲集來(청운납자운집래) : 맑고 청정한 수행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수행 정진하리라.
성모암 대웅전 삼존불
성모암 극락보전
성모암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좌상
고시례전 고시래의 유례
진묵대사는 불거촌에 어머니의 묘소를 정하고 후손이 없으므로 지속적 관리를 위해 진언으로,
제사 지내는 방편을 삼아 들에 나가 음식을 먹을 때 "고시래"라 하여 제사를 대신 하였다 한다.
고시래의 고시는 제주 고씨인 성모님의 고씨(高氏)에서, 래는 예도예(禮)를 써서 고시래라하여
간편하게 신행할 수 있게 한 것에서 유례 된다고 전한다.
성모암 고시례전 삼존불 ( 본존 석조석가여래좌상 )
성모암 진묵대사각영
聖母庵 大聖靈母調意氏眞影
성모암 九龍池 (진묵대사 탄생 440주년, 蓮花浮水의 의미를 담아 한반도의 지도형으로 조성 )
진묵대사 자모49제 제문 (震默大師 慈母四十九祭 祭文)
태중십월지은 하이보야(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열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슬하삼년지양 미능망의(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슬하에 삼년 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상 갱가만세 자지심 유위혐언(萬歲上 更加萬勢 子之心 猶爲嫌焉)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그래도 부족하온데》
백년내 미만백년 모지수 하기단야(百年內 未滿百年 母之壽 何其短也)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한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 》
단표로상 행걸일승 기운이의(單瓢路上 行乞一僧 旣云已矣)
《표주박 하나 들고 길거리에서 걸식하는 이 스님은 이미 말 할 것이 없거니와》
횡차규중 미혼소매 영불애재(橫釵閨中 未婚小妹 寧不哀哉)
《비녀를 꽂지 못하고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
상단료 하단파 승심각방(上壇了 下壇罷 僧尋各房)
《단에 올라 불공을 마치고 단을 내려와 제사를 파하니 스님들은 제각기 방을 찾아 들어가고》
전산첩 후산중 혼귀하처 오호애재(前山疊 後山重 魂鬼何處 嗚呼哀哉)
《앞산 뒷산만 첩첩한데 어머님 영혼은 어디로 떠나시렵니까! 아 ! 애달프고 슬프도다. 》
성모암 산신각
성모암 산신
성모암 종무소
성모암 승료
진묵대사의 모친 묘소
진묵대사의 존비묘소에서 우요삼잡으로 예를 올리는 참배객들 ! 고시내 ~
無子孫千年香花之地 진묵대사의 모친 묘소에서 소원을 빌면 한가지 소원은 꼭 ~~~ ?
유앙산 성모암 (維仰山 聖母庵) 전북 김제 만경 화포리 388번지
진묵대사(震默大師)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 : 1562 - 1633(명종 17-인조 11년).
전라도 萬頃懸 佛居村 출신으로 ,태어난 뒤 3년 동안 초목이 말라 시들었고, 비린내가
나는 음식과 마늘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성품이 지혜롭고 자비로워서 사람들이
"불거촌에 부처님 났다." 고 하였다고 전한다.
7세에 출가하여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내용을 통달 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봉서사 주지는 어린 진묵에게 조석으로 신중단에 소향예배(燒香禮拜)하는 소임을 맡겼다.
어느날 신중들이 그 주지 승에게 현몽하여 이르기를 우리 소신들이 어찌 감히 불(佛)의
예를 받겠는가 , 원컨대, 다시는 아침 저녁으로 소향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초의(草衣)가 지은 <진묵조사유적고 震默祖師遺蹟攷>에는 18가지 이적(神異)中
1.늙은 어머니를 왜막촌(倭幕村)에서 봉양하고 있을 때, 여름 날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산신령을 불러 모기를 쫓게한 뒤로는 이 촌락에 영영 모기가 없어졌다.
2.곡차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마시지 않는 것이 계행(戒行)이었는데,
어느 날 한 중이그것이 무엇이냐 ? 고 세 차례나 물었으나,중이 대사를 시험하기 위하여
모두 술이라고 대답 하였으므로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 중을 타살 하였다.
3.대사가 길을 가는데 소년들이 냇가에서 생선을 끓이고 있으므로 탄식하면서,
이 무고한 고기들이 확탕의 고생을 하는구나 ? 하니, 한 소년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스님도 먹고 싶지 않은가 ? " 하였다. 나도 잘 먹는다. 하면서 그 고기를
몽땅 먹은 뒤 냇가에 가서 뒤를 보니 무수한 고기가 살아서 헤엄쳐 갔다.
4.합천 해인사에 화재가 나자 입으로 물을 뿜어 껐다.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 香火之地)
진묵대사는 그가 출가하면 대를 이을 손이 끊기어, 그의 어머니 묘에 성묘할 사람이
없을 것을 예견하여 풍수설에서 말하는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 =
자손이 없어도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천년 동안 이어지는 명당 유양산)에 안장 하였다.
이 무덤에 고사를 드리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된다고 하여 400 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잘 보존 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 오늘날에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이 묘소가 퇴락될 즈음 丁巳年 (1917년) 5월에 고(故) 이순덕화의 현몽에 의하여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를 알게 되었다 한다,
부인이 영험의 놀라움에 기의(己疑)하여 묘소에 정성껏 시묘를 하는 동안 지방 유지 및
인근의 신도들이 진묵대사의 약력과 이순덕화 부인의 공덕 비문을 세우고 묘 아래 재각을
건립하고 삼존불을 위시하여 진묵대사 모자 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 己巳年 (1989년)
성모암으로 중창 .
당우로는 대웅전,고시례전,극락전, 종무소 요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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