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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들의 나라 [강명관]

문근영 2012. 6. 4. 07:13

제 269 호
왕들의 나라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조선시대 한문학을 전공하다 보니, 조선시대 문헌을 읽는 것이 날마다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자주 들춰보는 문헌 중 하나다. 왕을 중심으로 하여 쓰인 『실록』이니, 왕이 등장하지 않는 날이 없다. 물론 왕을 연구하기 위해 『실록』을 읽는 것이 아니기에 왕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도 자꾸 읽다보면, 왕의 인간 됨됨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한데, 나의 독서 경험으로는 조선시대 왕이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대개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다. 머리가 좋은 것도,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인격이 훌륭한 것도, 정치적 능력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 왕의 자식으로, 혹은 왕과 가장 가까운 피를 갖고 태어나 왕이 되었을 뿐이다.

왕의 권력···· 만사형통의 위력 지녀

사대부의 견제가 있다고 하지만, 왕은 조선시대 최고의 권력이다. 왕의 말 한 마디에 청명 하늘에 갑자기 피바람이 몰아쳐 조정 관료들의 목숨이 초개처럼 날아가고, 그 가족과 친구들 역시 곤장을 맞고 귀양길에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노비가 되기도 한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왕의 비호 아래 죽을 목숨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고, 잃었던 권력을 찾아 호사를 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엄청난 권력이지만, 그것이 대다수의 백성, 즉 상것이나 종놈의 행복을 위해 작용했던 경우란 별로, 아니 거의 없는 것 같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어떤 자가 왕이 되어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왕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그들이다. 쫓겨난 왕은 아무런 위세가 없다. 초라한 몰골의 범부(凡夫)일 뿐이다. 그러니 그가 휘둘렀던 절대 권력은 원래 그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일정 기간 부착되어 있던 것일 뿐이었다. 권력은 ‘왕’이란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다. 

왕은 사라졌다. 영국이나 일본, 태국과 같은 입헌군주국도 남아 있지만,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동의 받지 않은 권력으로서의 왕은 이제 과거의 유물인 것이다. 하지만 왕정의 본질까지 에누리 없이 사라진 것인가. 우리가 경험한 대부분의 대통령을 예로 들자면, 민주적 절차, 곧 선거를 거쳐 선출되면, 임기 동안 그는 왕과 진배없는 권력을 휘두른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권력적으로 통제하는, 거창하고 정교하고 전면적인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권력을 가지고도 그는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의지의 속내가 자신의 사익이거나 혹은 극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대다수 국민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다.  

무소불위 권력의 견제와 집중화를 막을 때····

대통령만이 아니다. 국가권력에 근거를 둔, 의회권력, 정부권력, 사법권력이 모두 동일하다. 선출되거나 선출되지 않거나 국가권력에 근거를 둔 모든 권력은 국민을 향해 일방적으로 작동할 뿐, 제어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의 직장이 대학이니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대학의 경우를 들어본다. 총장은 대학 내부에서 절대 권력이다. 아니, 전제군주다. 교육부의 눈치나 좀 볼까, 그가 하는 행위는 학내에서 견제 받지 않는다. 결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학생도, 교수도, 직원도 아무도 견제하거나 제지할 수 없다. 어떤 합리적 비판도 묵살하면 그만이다. 오직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어디 대학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은 어떤가. 방송국, 신문사는 또 어떤가. 수많은 사람의 삶을 쥐고 흔드는 왕은, 권력의 집중이 제도화된 곳이면 어디나 있다. 집중된 권력을 쥐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자질이나 인격, 능력은 갖추지 못하거나 덜 갖추었으되, 권력에 대한 욕망만은 보통 사람보다 서너 갑절 강력한 사람이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 저열한 수단과 교활한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데 의아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제도화된 권력을 집중을 이 세상 생겨날 때부터 그런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신념을 근거로 삼아, 곳곳에서 왕들이 일방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선거의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선거를 계기로 하여, 곳곳에서 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 곧 제도화된 집중된 권력이 편재(遍在)하고 있는 상황이 정당한 것인지 발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산은 「탕론(湯論)」에서 민중의 의지에 따라 권력을 집중시켰다가 다시 민중의 의지에 따라 권력을 박탈하는 정치를 상상했다. 선거의 해라, 문득 「탕론」이 떠올라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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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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