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아름다운 마무리 (11) 병상에서 배우다 - 풍요로운 아침

문근영 2012. 3. 29. 11:31

 

 

 

 

 

산중에는 고요한 거룩함이 있다. 특히 아침나절의 산은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다. 들이마시는 공기에는 숲 향기와 밤새 내린 이슬기가 배어있다.

 

이와 같은 신선한 아침을 잘 맞이할 수 있어야 그날 하루의 삶도 알차다. 이 거룩한 시간을 신문이나 방송 등 너절하고 잡스런 바깥 소리로 얼룩지게 한다면 그것은 고요와 거룩함에 대한 모독이다,

 

새날이 시작되는 이 거룩한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은 달라진다. 만약 새날의 시작을 부질없는 일로 맞이한다면 그날 하루는 잘못 산 날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선한 일로 시작한다면 그의 삶은 그만큼 아름답고 선하게 채워진다,

 

신선한 아침을 이와 같이 찬탄하고 있는 나 자신은 지난밤 바른쪽 어깻죽지가 너무 저리고 아파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생노병사, 생명의 주기인 그 병고를 치루는 중이다.

 

석 달쯤 전, 수원지에서 물길을 고치느라고 무거운 돌을 서너 차례 들어 옮겼더니 그 뒤부터 바른쪽 가슴께가 바늘끝으로 찌르듯 따끔거리고  어깻죽지가 납덩이처럼 무겁고 저렸었다. 담이 들어 그러나 싶어 침을 맞고 지압을 받았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얼마 전 골프를 즐겼던 한 친지로부터 늑골에 금이 가면 그런 증상이 나타나더라는 경험담을 들었다. 그는 골프공을 잘못 쳐 이 대지인 '지구공'을 치는 바람에 늑골에 금이 가  한동안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저께 달포 만에 길상사에 나간 걸음에 큰맘 먹고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은 결과 바른쪽 여섯 번째 갈비뼈에 균열이 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치유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다친 부위는 지금 아무는 중에 있다고 했다. 질병의 원인을 사진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얼마쯤 궁금증이 풀렸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앓을 만큼 앓으면 죽을병이 아닌 한 나을 때가 있다.

 

옛사람의 가르침에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교훈이 떠오른다. 내가 몸소 앓아 봄으로써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동병상련. 우리가 어떤 병고를 겪을 때 그것을 단순하게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이웃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질병을 딛고 살아간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꼭 같이 주어진 것이다. 찬란한 아침햇살과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우리 모두에게 고루 주어진 것처럼.

 

어둠이 가시고 새날이 밝아 오는 여명은 신비한 고요로 서서히 대지의 옷을 벗긴다. 이런 시각 대지의 나그네인 우리들 자신도 한 꺼풀씩 묵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그래서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즐거움이 됐건 괴로움이 됐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아침, 식탁에는 들꽃이 한다발 꽂혀 있다. 가을들녘의 풍요에 못지않은 풍요로운 내 아침이다.

 

당신은 이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만날 그날이 그날처럼 그렁저렁 맞이하고 있다면 새날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누가 됐건  한 생애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하루 하루는 그 빛으로 인해 새날을 이룬다.

 

추석날 아침이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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