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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학은 사회의 공공재(公共財)다 [염재호]

문근영 2012. 3. 6. 07:17

제 576 호
대학은 사회의 공공재(公共財)다
염 재 호(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조교할 때의 일이다. 강의조교의 일은 대형 강의의 학생들을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 매주 강의주제와 관련된 토론을 하거나 학생들을 상담하는 일이다. 또 다른 일이 시험과 성적관리다. 정치학과에서 처음 강의조교를 할 때 시험지와 답안지를 들고 미국인 동료 강의조교와 함께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누어주고 감독을 하려고 하니까 미국인 친구가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의아해서 물어보니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답안지 겉표지에 있는 명예규정(honor code)에 서명을 하고 시험을 보기 때문에 감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명예서명으로 약속을 했고 학교는 이들이 앞으로 미국을 이끌고 나갈 엘리트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여기고 시험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교실 밖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동료 조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 대단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험에서 만약 어느 학생이 책이나 자료를 참고해 답안을 작성하다 발각이 되어도 교수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교수가 생각해서 답해야 하는 시험문제를 내지 않고 보고 써도 되는 문제를 냈기 때문에 교수에게 시험문제를 잘 못 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포트의 경우는 다른 곳에서 표절한 것이 확인될 경우 가차없이 학교를 떠나야 할 정도로 처벌이 중하다. 미국 대학이나 유럽에도 부실한 대학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학과 대학생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이들의 자기 정화 능력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하기에 충분한 토양을 제공해준다.

대학도 대학교육의 틀을 바꿀 때가 되었다

반값등록금이라는 정치적 구호로 촉발된 전국 113개 대학에 대한 초유의 감사원 감사 결과가 지난 3일 발표되었다. 이 결과로 대학이 등록금을 과다책정하거나 비리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연세대는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는 사립대학에 대해 업무 전반에 걸친 포괄적 직무감사는 대학자율성이라는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대교협 소속 150여개 대학총장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감사원의 지적사항은 받아들이지만 일부 대학의 문제를 대학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여 대학을 매도하거나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숫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힘입어 대학진학율은 84%까지 올라갔었다. 대학진학율의 급등은 대졸실업의 문제로 이어졌고, 대졸실업은 지방의 많은 사립대학의 부실경영으로 이어져 이들 대학들이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 마치 카드대란이나 저축은행의 사회적 혼란을 보는 것처럼 자율화의 물결에 편승해 폭발적으로 신설된 대학들도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이런 대학의 부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선거구에 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공약을 남발하고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들과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대학을 인가해 준 교육당국의 근시안적 처사를 탓하기에는 너무 때늦은 감이 있다.

이제 대학도 신뢰받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하고 우리 사회도 대학을 신뢰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대학을 비판하고 파렴치한 집단으로 내몬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선결되어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대학을 공공재로 여기고 관심을 갖는데 있다. 정부는 그동안 대학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우리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교육비를 지불해가며 공부를 해서 사회에 공헌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학교육은 수익자부담 원칙으로만 생각하고 지원을 게을리했다. 유럽이나 일본, 호주, 심지어 미국까지도 정부가 대학에 엄청난 지원을 하는 것은 대학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들의 최종 출구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신청하여 받는 연구비를 제외하고 사립대학에 지원을 거의 못하는 정부는 최소한 사립대학의 이공계에 대해서 만이라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학등록금이 현재의 반값이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의 비리때문이 아니라,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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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재호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고려대 법대 졸업
· 미국 스탠포드대 정치학박사
·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 한국정책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딜레마 이론>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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