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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조의 후계자 교육 [김문식]

문근영 2012. 2. 14. 07:07

제 258 호
영조의 후계자 교육
김문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왕세제로 있던 영조가 국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31세였다. 영조는 결혼 후 궁 밖으로 나와서 살았지만 경종이 후사가 없자 궁 안으로 들어와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그는 왕세제 시절에 대리청정을 둘러싸고 심각한 위기를 겪었고, 국왕이 된 후에는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이인좌의 난을 경험했다. 영조로서는 이래저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영조는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자 후계자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고민했다. 자신의 정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후계자를 제대로 길러놓지 못하면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세자가 편안한 궁궐 안에서 태어나 편안하게만 자랐기 때문에 세상사의 어려움이나 고된 일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크게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조기 교육!

왕실에는 세자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스승으로 구성된 세자시강원이 그것이다. 영조의 후계자였던 사도세자는 두 살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일곱 살부터 본격적인 시강원 교육을 받았다. 일종의 조기교육이었다. 영조는 시강원에서 경전이나 역사서에 나오는 내용을 가르치지만, 국왕이 속으로 생각하거나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공식 기록에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왕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뿐이므로, 세자에게 제왕이 하는 일을 제대로 가르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영조는 국왕으로서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사도세자를 위한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1740년대에 영조가 편찬한 『대훈』『상훈』 『자성편』 『심감』 『정훈』 같은 책들은 사도세자를 교육시키기 위한 제왕학 교재였다. 영조는 여기에 자신이 평소 느꼈던 감정, 책을 읽다가 잘못을 깨닫고 반성한 일, 자신이 새로 터득한 사실을 자유로운 문체로 솔직하게 기록했다. 영조는 역사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적을 읽으면 이를 자신의 행동에 비춰보곤 했다. 그들의 본받을 만한 일을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지, 경계해야 할 일을 지키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하는 방식이었다. 영조에게 있어 과거 인물들의 행적은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케 하는 거울과 같았다. 

영조의 아들교육 실패는 몸이 아닌 말로만 가르쳤기 때문

영조는 부끄러운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한 번은 언관이 잘못을 지적했을 때 화가 치밀어 하마터면 그를 죽일 뻔했는데,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만류하여 이를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영조는 이 일을 『속대전』에 기록하여 훗날의 경계로 삼도록 했다. 영조는 일상에서 느낀 소소한 경험을 간략하게 적기도 했다. 심신을 점검할 때는 조용한 밤 시간이 좋다든지, 잡념이 생기면 즉시 눈을 감고 마음과 정신을 수습하면 이내 안정이 된다는 것이 그런 예이다. 영조는 혼자서 조용히 지내거나 소수의 신하들과 부담 없이 이야기하는 밤을 좋아했다.

사도세자는 결국 영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세자는 1749년에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얼마 후 영조와의 사이가 나빠졌고 끝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훗날 영조는 세자가 처음에는 자신의 가르침을 잘 따랐지만 나중에는 심각해졌고, 이 때문에 밤낮으로 가슴을 치며 속을 태웠다고 했다. 영조는 자신의 교육 방법에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세자를 위한 교재를 만들어 가르쳤지만, 몸으로는 가르치지 못하고 말로만 가르쳤다는 반성이었다. 전통교육에서는 말로 하는 언교(言敎)보다 몸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신교(身敎)를 중시했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후 영조의 기대는 정조에게로 옮겨졌다. 영조는 다시 정조의 교육을 위한 교재를 편찬했고, 수시로 손자를 만나 자신의 경험을 전수했다. 다행히 정조는 영조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고, 몇 차례 고비를 넘긴 끝에 훌륭한 국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영조의 생애를 보면, 훌륭한 국왕으로 살아가기가 힘들었지만, 국왕이 될 후계자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영조의 후계자 교육은 아들에서 실패하고 손자에서 성공했다. 자신의 혈육을 죽이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후의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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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문식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조선후기 지식인의 세계인식』, 새문사, 2009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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