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왜 소녀가 아니라 한결같이 소년인걸까? 떠도는 방랑자, 건달, 음유시인, 황야의 총잡이는 왜 하나같이 남성들인가? 예컨대 오디세우스나 빌헬름 마이스터, 타우게니히츠, 랭보, 두보, 김삿갓, 석양을 등지고 표표히 황야로 떠나는 정의의 건맨 세인의 긴 그림자…
대물림해 온 유서 깊고 친근한 가난과 달콤하고 씁쓸한 첫사랑의 좌절, 머나먼 낯선 곳으로의 탈출-그것은 대체로 시골 소년의 가출과 방랑, 군대와 원양선, 낯선 도시와 유학의 노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떠남과 탈향의 무대는 세월이 흐르면서 청노새 짤랑대는 신작로와 성황당 고갯마루나 나루터에서 기차역과 부두, 터미널, 공항 등으로 바뀌지만 언제나 떠나는 쪽은 남자이고 남겨지는 사람은 여자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여전히 나이와 관계없이 많은 여성들의 18번곡이다.
그렇다면 떠나는 여자는 정녕 없는가. 여자인들 왜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탈향의 기회는 여성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여성은 카추샤나 홍도처럼 첫사랑의 순정에 울고, 떠나간 도련님의 방랑벽에도 꿋꿋하게 가정을 지켜야 할 것을 강요받는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전통시대에 고향을 떠나는 여성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강요에 의해 머나먼 타향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령 나라의 안녕을 위해 이역만리 적국의 왕에게 시집을 가거나(서시와 왕소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내 한 몸을 제물로 바치는 경우나(논개, 유디트, 이피게니아), 죽은 아버지를 살리거나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황천길과 인당수까지 마다하지 않는(바리데기, 심청) 여성들은 어떤 점에서 당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이상화된 여성들이었다.
인생역정 드라마, 심청의 성장과 해탈을 보며···
|
|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머나먼 곳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성은 심청이다. 그런데 극작가 최인훈은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심청 설화를 사실적인 정황과 인과관계의 틀 속에 집어넣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하였다. 여기서 심봉사는 공양미 3백석을 마련하기 위해 거간꾼 뺑덕어미의 꾐에 따라 뱃사람들에게 심청이를 대국 땅 청루로 팔아먹는다. 심청이는 청루에서 창녀 생활을 하다가 마음씨 좋은 조선 인삼장수 김서방을 만나 몸값을 내고 풀려나 귀국선을 타지만 해적에게 잡혀가 또 다시 모진 고생과 시련을 겪는다. 마침내 심청이는 나이 들고 꼬부라진 맹인 거지가 되어 고향 땅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용궁 갔다 온 얘기를 들려주며 아버지와 김서방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설화와 신화 속에 박제화된 여성을 역사 속의 살아 있는 여성으로 되살려내는 최인훈식 이야기 기법(스토리텔링)을 계승한 작가는 황석영이다. 그는 장편소설『심청』에서 심청 설화를 국제적 인신매매/창녀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공간적 무대를 한국/중국/싱가포르/ 일본 등 동양권 전역으로 확장시켰다. 『바리데기』는 같은 방식으로 바리데기 설화를 해체하여 재구성한 작품인데, 여기서는 북한에서 태어난 바리가 탈북자로서 중국을 거쳐 밀항선에 실려 머나먼 영국으로까지 건너가 국제적 유랑난민으로서 세계사적인 고통을 짊어지며 살아간다. 바리의 유랑과 고통은 이런 점에서 현대화되고 세계화되었지만, 일반 민중의 고통을 대신 아파하며 치유해주는 소임을 떠맡는다는 점에서 전통시대 무당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요즘 여성의 스토리 텔링이 귀향하고 있다
|
|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리고 황선미의 베스트셀러『마당을 나온 암탉』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성장소설로 꼽힌다. 현실을 뛰어넘는 소설이나 드라마는 없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심청이나 바리데기에 못지않은 감동적인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가령 정신대 할머니들의 기막힌 사연들은 심청이나 바리데기의 유랑기보다 더 파란만장하고 가슴 아프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감동적인 성장소설의 주인공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이소선 여사이다. 그녀는 대구 근교의 낙동강변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재봉사에게 시집 가 자식들을 낳아 키우며 가난과 싸우던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다가 큰 아들 태일의 분신자살을 겪은 후, 아들의 뜻을 이어 나머지 생애를 1천만 노동자의 어머니로서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2년 여 동안 진행된 구술 자료를 책으로 묶은 그녀의 생애사『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모든 설화와 소설, 드라마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가슴 벅찬, 우리시대 여성의 탈출과 성장과 귀향의 기록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