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김 윤] 이 유

문근영 2011. 12. 26. 13:42

 

이 유

—부적 6

 

  김 윤

 

 

 

눈보라 점점이 막 시작인데

산은 가뭇없고

계유년을 생각했어요

 

생명주 쟁쳐서 숨 막히게 바느질한

그 적삼* 본 일 있어요

허리를 다 가리도록 길이가 긴

품이 큰 남자의 흰 비단 저고리

소매와 앞섶 낭자한 피고름에

화들짝 놀라 가만히 서 있다가

 

이유*라고 했지요

등허리 속 어둠이 덧나고 터져서

하룻밤도 저승까지 흘러가지 않은 날 없을 테니

강물은 또 철철 제자리로 데려다 놓고

해는 떠서

다시 늑골에 못질하는 소리

생명주 적삼 날실과 씨실에 엉겨 붙은

저 부적들 몇백 년 노 젓는 소리 들었어요

절집 우물은 꽁꽁 얼어 목어 비늘 툭 떨어지는데

 

쇠종 소리 흥건히 물처럼 얼고

저물어서

언 목어가 쿵쾅거리며 강을 건너가요

북풍이 비탈들을 끌고 어디로 가는 소리

서늘한 목소리가 한 줄 들렸지요

내 앞섶에도 피고름 낭자한 것 들켰나요

 

 

————

* 세조가 입었던 명주 적삼이 상원사 문수보살 복장 유물로 월정사에 보관되어 있다. 적삼에는 피고름이 심하게 묻어 있다.

* 수양대군(세조)의 이름.

 

 

 

                        『시와 시학』(2011년, 겨울호)

--------------

김윤 / 1952년 전북 전주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붕 위를 걷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