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
—부적 6
김 윤
눈보라 점점이 막 시작인데
산은 가뭇없고
계유년을 생각했어요
생명주 쟁쳐서 숨 막히게 바느질한
그 적삼* 본 일 있어요
허리를 다 가리도록 길이가 긴
품이 큰 남자의 흰 비단 저고리
소매와 앞섶 낭자한 피고름에
화들짝 놀라 가만히 서 있다가
이유*라고 했지요
등허리 속 어둠이 덧나고 터져서
하룻밤도 저승까지 흘러가지 않은 날 없을 테니
강물은 또 철철 제자리로 데려다 놓고
해는 떠서
다시 늑골에 못질하는 소리
생명주 적삼 날실과 씨실에 엉겨 붙은
저 부적들 몇백 년 노 젓는 소리 들었어요
절집 우물은 꽁꽁 얼어 목어 비늘 툭 떨어지는데
쇠종 소리 흥건히 물처럼 얼고
저물어서
언 목어가 쿵쾅거리며 강을 건너가요
북풍이 비탈들을 끌고 어디로 가는 소리
서늘한 목소리가 한 줄 들렸지요
내 앞섶에도 피고름 낭자한 것 들켰나요
————
* 세조가 입었던 명주 적삼이 상원사 문수보살 복장 유물로 월정사에 보관되어 있다. 적삼에는 피고름이 심하게 묻어 있다.
* 수양대군(세조)의 이름.
『시와 시학』(2011년, 겨울호)
--------------
김윤 / 1952년 전북 전주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붕 위를 걷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김 산] 어쩌면 허허벌판 / 은하야 사랑해 (0) | 2011.12.26 |
---|---|
[스크랩] [이해인]산을 보며 (0) | 2011.12.26 |
[스크랩] [이성복] 어두워지기 전에 1 (0) | 2011.12.25 |
[스크랩] [유홍준] 반쪼가리의 노래 (0) | 2011.12.25 |
[스크랩] [한도훈] 홍시 (0) | 201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