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현판 해강 김규진

고사목

화재厄鹽

천왕문 현판 유당 정현복 (1909~1973)

局司壇: 大伽倻의 始祖神인 가야山神 (正見母主)을 기려 세운 사당 ↕


구광루 남천

목어

삼층석탑 청화당 지관1988書

목조 비로자나불좌상

大寂光殿 柱聯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 부처님이 대광명을 두루 놓으사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 모양이 끝이 없어 지극히 청정하네.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 구름이 모든 국토에 충만하듯이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네.
광상소조함환희(光相所照咸歡喜) 광명이 비치는 곳에 기쁨이 넘치고
중생유고실제멸(衆生有苦悉除滅) 중생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네.

대적광전 소맷돌

대적광전 벽화 『목어의 유래』

명부전

명부전 업경대

독성각

수다라장 연화문

반야심경

법보전과 수다라장 건물의 벽면에는 위아래로 두 개의 窓이나,下창과 上창의 크기가 서로 다르게 돼 있다.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이것은 큰 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함과 동시에, 가능한 한
그 공기가 골고루 퍼진 후에 밖으로 빠져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1995년 우리나라의 석굴암,종묘와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장경판전은 4동(수다라장.법보전,東西 寺刊藏)으로 국보 제 52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안에는 국보 32호인 고려대장경판과 국보 제 206호인 고려각판을 보존하고 있다.
건물의 바닥은 숯,횟가루,소금,찰흙 등으로 되어있어 습도와 온도 조절이 잘된다고 한다.

법보전뒤의 장원

팔각칠층수미정상탑 1986년조성

學士臺와 전나무
최치원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할때 즐겨 찾아와 친형인 현준대사,그리고 정현화상과 담론을 즐겼고
시를 지으며 때때로 가야금을 타고 즐겼던 곳이라 하고 전나무는 그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라 전해진다

영지

해인사 길상탑(海印寺 吉祥塔) 보물 제1242호
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조그만 탑이 157개가 있으나,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탑에 대한 기록인 탑지(塔誌)는 4장인데, 통일신라 후기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에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5)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철대종사탑. 사리탑은 재일작가 최재은에 의해 조성.

고운 최치원 제시
광분첩석후중만(狂芬疊石吼重巒): (중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듯 쏟아지는 물소리에)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사람의 소리는 지척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고)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시비의 소리 귀에 들릴까 언제나 두려움에)
고교유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모두 귀먹게 하였구나)

농산정과 고운선생둔세지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번지
가야산 해인사는 신라시대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 하기 위해 세워진 화엄십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
신라 40대 임금인 애장왕 3년(서기 802년)에 창건된 고찰(古刹)이다.
해인사가 법보종찰인 것은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자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인 고려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기 때문이다.
海印은 일렁임이 없는 바다에 만물의 형상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이 번뇌가 없는 마음에는 만물의 이치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로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온 이름이다.
가야산에 해인사가 터를 행주형국이라하니,
『行舟形= 돛대바위(수미정상탑)-장경각(재물선적)-대적광전(선장실)-고사목(닻)』
이는 곧 큰 바다에 배가 가고 있는 모양이란 뜻이다.
해인사는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두 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창건하여 930년경 희랑(希郞)대사에 의하여 크게 중창되었으며,
균여, 의천, 부휴, 사명, 환적스님 등 선지식들을 배출한 우리 나라 삼대 사찰중의 하나이다.
현재의 해인사는 30여동에 5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는 한국 최대의 종합 수도(修道)도량인
총림(叢林)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170여 곳의 寺庵이 있다.
1398년 고려대장경이 강화에서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法寶)사찰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성종 19년(1488) 덕종의 비 인수(仁粹)왕비와 예종의 계비 인혜(仁惠)왕비가 선왕의 뜻을 받들어
學祖대사로 하여금 판전 30칸을 짓게 하고 보안당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490년까지 많은 전각과 요사 등 160여칸을 완성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고 한다.
그 후 해인사는 임진왜란 때도 전화(戰禍)를 면했으나 그 후 여러 차례 화재를 입었다. 그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ㅇ 숙종 21년(1695) : 동쪽의 많은 요사와 만월당, 원음루 화재.
ㅇ 숙종 22년(1696) : 서쪽의 여러 요사와 무설전 화재.
ㅇ 영조 19년(1743) : 대적광전 아래 수백칸 당우 화재.
ㅇ 영조 39년(1763) : 화재
ㅇ 정조 4년(1780) : 무설전 화재.
ㅇ 순조 17년(1817) : 수백칸 당우 화재.
ㅇ 고종 8년(1871) : 법성요 화재.
이와 같이 1695년 이후 1871년까지 해인사에는 일곱 번의 큰 화재가 있었으나 판전 건물은 피해가 없었다.
일주문(가야산 해인사)-해인총림(천왕문,봉황문)-해탈문(불이문) 해동원종대가람1865년만파-
구광루-석등,탑-대적광전-8만대장경에 이르는 108계단,그리고 판고 기둥이 108개 ! ?
★유네스코에서는 1995년 우리나라의 석굴암 · 종묘와 함께 대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해인사 대장경판전은 4동(수다라장.법보전,東西 寺刊藏)으로 국보 제 52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안에는 국보 32호인 고려대장경판 81,258매와 국보 제 206호인 고려각판 2275매를 보존하고 있다.
수다라장 건물의 통풍이 잘 이루어지도록 건물 외벽에 붙박이 살창을 두었다.
판전 건물은 바람이 스쳐지나가도록 서남향을 하고 있는데,
서남향은 건물 주변 어느 곳에도 영구히 음영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배치이기도 하다.
★대적광전 앞의 삼층탑은 마당의 중앙이 아니라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는데, 이는 판전 옆으로 통하는 바람골인
좌청룡이 허(虛)하기 때문에 탑을 배치함으로써 풍수지리적인 균형을 맞춘 것이다.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2005.7.4
경남 합천 해인사는 4일 오후 비로자나불상과 조성 연대가 적힌 복장(불상 내부)을 문화재 전문가들과 언론에 공개했다.
높이 127㎝, 무릎 폭 96.5㎝인 이 불상은 눈을 거의 감은 채 결가부좌로 앉아 지권인(검지를 쥠)을 하고 있다.
중화 3년은 당나라 희종 때 연호로 신라 49대 헌강왕(875~886) 때인 서기 883년에 해당한다.
학계에서 공인된 가장 오래된 예배 대상 목조불상으로는 1274년 만들어진 서울 안암동 개운사의 목조아미타불좌상이며,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보수된 기록이 최근 발견된 충남 서산 개심사 소장 아미타삼존불상이 더
오래 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해인사 비로자나불상은 국내 목조불상의 출현 시기를 400년 가까이 앞당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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