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칠불사 (하동)

문근영 2011. 10. 18. 10:17

 칠불사로 오르는 계곡 茶田의 초록물결

 

  지리산 칠불사   제월통광 書

 

영지: 어느날 허황옥(왕비)은 아들이 수도하는 운상원을 찾아 갔다. 이 때 장유화상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아들들이 모두

성불했으니 오늘은 만나봐도 좋다"고 허락했는데 이때 공중에서 「연못을 보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소리가 들려 연못을

들여다 보니 황금 빛 가사를 걸친 일곱 아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하여 천비연(天飛淵)이라고 한다.

  칠불사 전경

 

 보설루(普說樓): 정면5칸의 맞배지붕으로 누각 건물로 문(門)의 역할을 한다. 보설루의 정면에는

                        여초거사가 쓴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보설루 배면 편액    여초 김응현

 

  원음각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이다.  석가여래좌상 좌우에 문수ㆍ보현 보살좌상 봉안.

 최근에 조성한 목조후불탱ㆍ칠불탱ㆍ신중탱 등은 00스님이 조각 봉안하였다.

  대웅전 삼존불(문수 석가 보현)과 목조 후불탱

 

  대웅전 닫집

 

  대웅전 닫집주변의  공화 비천상

 

  김수로왕의 일곱왕자 성불하였슴을 상징한 칠여래목탱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 신중탱

 

 아자방: 신라 효광왕(재위 897~911) 때는 김해 지방에서 온 담공(曇空) 선사가 선방으로 벽안당(碧眼堂)을 지었는데,

 이 아자방은 이중 온돌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방안 네 모퉁이와 앞뒤 가장자리 쪽의 높은 곳이 좌선처(坐禪處)이며,

 십자(十字) 모습으로 된 낮은 곳은 좌선하다가 다리를 푸는 경행처(輕行處)가 된다.
 1982년 현재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문수전(文殊殿)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금동 문수보살좌상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왼손에는 꽃 위에 지혜의 그림이 그려있는 청련화를 쥐고 있다. 뒤로는 문수보살과 보현 보살,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십대제자와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 석가모니후불화가 있다.

 

  설선당

 

 영지 옆에 백암(栢庵)과 무가당(無價堂)부도가 모셔져 있다.

 

  주차장 옆에 자리한 부도

 초의선사다선탑비.

               艸衣禪師茶禪抄錄..  諸法不二 茶禪一如..  반야봉 흰구름 섬진강 푸른물결..  온누리 불국정토 맑은향기...
               불기 2538(1994)년 채다가절 곡우일에 주지 제월통광 撰, 여초거사 김응현 書, 석담거사 김광열 刻.

 

삼신산 칠불사 (三神산 七佛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번지

칠불사는 장유(長遊) 화상의 가르침으로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은 출가하여 서기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을 짓고 정진하여 103년(가야 수로왕 62)년에 이곳에서 모두(광불, 당불, 상불, 행불, 향불, 성불, 공불)

도를 깨우치자  수로왕(首露王, 42~199)이 이를 기념하여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후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828년 한국 다도의 중흥조로 추앙 받는 초의 의순(草衣意恂1786~1866) 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차(茶)에 관한 저술인 『다신전(茶神傳)』과 『동다송(東茶頌)』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한다.

 

1951년 6.25전쟁 중 지리산 공비토벌의 와중에 사찰 전체가 불타 버렸고,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페허로 남아 있었는데,

제월통광(霽月通光) 스님이 1978년 부터 최근까지 중창 불사를 이루어 오늘에 이른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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