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운대 숲 산책로. 정답게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행복 또 행복

감천 태종대 모자섬

주전자 바위섬

작은모자 - 中帽 - 大 모자섬

아들, 딸 바위섬

쥐섬 동이섬

몰운대 의 끝 경승

자갈마당 을 지나 몰운대 끝자락의 비경

다대포 객사

다대포 객사편액 회원관 요산 김정한書

◎동래부사 李春元의 몰운대 詩碑. 1999.6.12 건립.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로 이어졌는데,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常見仙人賀鶴來(상견선인하학래)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해변 모래밭을 나두 그이와 함께 걷고 싶당 ㅎㅎㅎ

넓디 넓은 다대포 모래사장의 일부분

일몰. 서쪽 산 넘으로 떨어지는 태양

다대포몰운대(多大浦沒雲臺). 부산 사하구 다대포동.
부산의 3대(臺)라 하면 태종대,해운대,몰운대이다.
몰운대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해천만리(海天萬里)의 바다 경관을 바라볼수
있는 승경(昇景)이다. 낙동정맥의 마지막 지점이 바로 몰운대이다.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목도, 금문도, 동섬, 동호섬, 팔봉섬, 솔섬, 오리섬, 쥐섬, 모자섬, 자섬
등 모두 몰운대와 함께 다대동 산144 번지 이다.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으로 다대포 서남쪽 해발 78m의 몰운대는 총면적은 506천㎡로
오래 전에는 몰운도(沒雲島)라는 섬이었다.
몰운도를 몰운대라 하지만 몰운도에는 몰운대(沒雲臺)와 화손대(花孫臺)의 두 대(臺)가 있다.
일본통신사 조엄(趙樟)이 1763년 해사일기(海擄日記)에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한 뒤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하였다.
몰운대의 이름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그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섬이
보이지 않는다고 구름속에 빠진 섬이란 시화적(詩畵的)인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몰운대는 예로부터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출렁거리는 파도와 수려한 모래밭 등으로
빼어난 경승지로 이름이 나 있을 뿐 아니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어 몰운대의
풍경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해송을 비롯해 90 여종이 자라고 있으며, 솔개, 굴뚝새,
갈매기, 바다쇠오리 등의 철새들을 볼수 있는 천혜의 시민공원이다.
◎정운공순의비鄭運公殉義碑. 지방문화재기념물 제20호, 다대동 산 144번지.
임진왜란때 釜山浦 海戰에서 中軍將의 직책을 맡았다가 부산포에서 전사한 정운공의 사적을
적은 殉義碑가 몰운대 끝자락에 있다 (평상시 출입통제).
정조22 (1798)년에 공의 8대손 정혁(鄭爀)이 다대포 첨사로 부임하여 정운공의 공덕을 추모하는
순의비를 세웠는데, 이조판서 민종현이 비문을 찬하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글씨를 썼다.
1974년 비각(碑閣)을 건립, 이 비석은 높이 172㎝, 넓이 69㎝, 두께 22㎝ 이다.
앞면에는「忠臣 鄭運公 殉義碑」, 뒷면에는18행(行)으로 정운공의 순절사적(殉節事蹟)을 밝혔다.
◎다대포객사 지방유형문화재 제3호.
객사란 조선시대 지방 관청 건물의 하나로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으로 사신(使臣)이 있을때는 그 사신의 숙소가 된 곳이다.
조선시대에 부산에는 다대포 첨사영,부산진성 안에 공진관,지금의 수영에 영파당(寧派堂),
동래부에 봉래관(蓬萊館) 객사가 있었으며, 초량 대동관 객사에 조선역대 국왕의 전패(殿牌)를
봉안하고 있었다. 지금은 다대포진 객사만 남아 있다.
이객사는 다대포 첨사영의 성안(본래 위치는 다대초등학교 남쪽 정문 서편)에 『회원관懷遠?』
이라 불린 첨사영 건물로 있었는데 1904년 개설된 사립 다대 실용학교 교실로 사용되어 오다가
다대 보통학교로 개편된 뒤에도 교실 구실을 해 와서 낡아졌지만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객사
건물이다.창건년대는 알수없으며, 1825년 중수, 1970년 몰운대로 옮겨 원형 복원하였다.
환상적인 몰운대의 일출과 일몰의 풍광,
그리고 광활한 다대포 해변 모래밭에 네 발자욱을 코옥 새기고...
낙동강 하구를 사랑하는 님과 행복한 미소를....

전체 4.1km를 철거하고 안보 체험장용으로 남겨둔 철조망과 콘크리트 초소

★낙동강변 2.8km의 철조망을 19년 만에 철거 작업중.....
1983년 12월 3일 부산시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남파간첩을 내려놓고 달아나던
간첩선을 격침시켜 1명 사살하고 2명 생포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국방부의 요청으로 수자원공사에서 1988년 4월에 다대포해수욕장 주변에
철조망 4.1km 설치하였던 낙동강변 신평동 56호 광장∼다대포해수욕장 간의
철조망(2.8㎞) 철거작업이 2007년 6월 시작됐다.
다대포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던 철조망 1.3km는 2002년 4월에 철거 되었다.
철조망을 없애는 대신 경계용 폐쇄회로(CC) TV 7대를 설치하고,
철조망 30m는 철거하지 않고 온 국민들의 안보체험장으로 활용키로 했다고 한다.
철조망 옆 강변대로의 일부 구간을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하고
도로와 하구 사이 제방을 친수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공사가 완료되면 시민들의 산책로및 휴식공간으로의 명소가 될것으로 사료된다.
요산 김정한(樂山 金廷漢.1908.9.26∼1996.11.28) 소설가.
경남 동래군 북남면 남산리(지금의 부산 금정구 남산동 661-4 생가)
경상남도 동래(東萊) 출생. 향리에서 한문을 배우고, 1928년 동래고보(東萊高普)를 졸업하였다.
그해 대현고등보통학교 교원이 되었으나,
일본인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고 조선인교원연맹(朝鮮人敎員聯盟)을 조직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수업을 하면서 조선인 유학생회에서 발간하는 《학지광(學之光)》 편집에 참여하였다.
1930년 동아일보에 《어느 겨울 날》을 발표하였고,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이어 《옥심이》 《항진기(抗進記)》 《당대풍(當代風, 1938)》 《낙일홍(落日紅, 1940)》 등 현실주의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 관여하였고, 교직·언론계에 종사하였다.
19966년에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여 《수라도(修羅道, 1969)》 《인간단지(人間團地, 1970)》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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