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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일본을 왜(倭)라 호칭했습니다. 작은 섬들로 구성된 나라여서 작은 나라라는 의미도 있고, 체구가 작은 사람이 많아 ‘왜’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보통은 왜인(倭人)이라고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나 경술침략 이후로는 ‘왜놈’이라는 얕잡아보는 말을 흔히 사용했습니다. 우리민족과의 구원(舊怨)을 따지기 전에 일본은 이제 어떤 의미로도 ‘왜’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대국의 위상을 얻었고, 세계의 중심국가의 하나로 성장했음은 재언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일본이 요즘 강도 높은 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대재앙을 맞아 비탄에 빠져있습니다. 피해 입은 일본인은 물론 모든 일본인에게 깊은 위로와 위안의 말씀을 올립니다. 한편으로 대재앙을 맞아 위기와 절망의 현실에서 예의와 염치를 지키고 발휘하여 인류의 인내심과 절제력을 보여주는 높은 국민의 도덕성에 마음으로의 찬사말씀을 드립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왜구’들의 침입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좋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사대부들은 일본을 무조건 천시하면서 인간이 사는 나라로 취급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던 시절에 유일하게도 일본의 학술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서, 그들의 문학과 경학의 연구서를 읽어 본 다산 정약용은 일본의 학술문화 수준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면서 일본은 또 다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그런 수준에서는 확실히 벗어났다는 속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등유정(伊藤維楨)·적생조래(荻生徂徠)·태재순(太宰純) 등 일본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의 문장과 경학관계 논문을 읽어 본 다산은 그들의 정예(精銳)한 이론에 깜짝 놀라 이렇게 높은 문화수준의 국가가 왜 남의 나라를 침략하겠느냐면서 이제 그들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18세기말이었으니, 제국주의(帝國主義)의 본색에 대한 명확한 진단을 못한 다산은 일본을 너무 믿고 말았던 잘못을 범했다고나 할까요. 1836년에 세상을 떠나 74년 뒤인 1910년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든 일본을 정확히 관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다산을 속인 것입니다.
“앞에 열거한 몇몇 학자들의 경의(經義)와 예의(禮義)에 대한 이론이 이런 정도이니 그 나라는 반드시 예의를 숭상하고 나라의 원대한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여 아비규환의 재앙속에서 질서의식이 강하고 예의와 염치가 살아 있는 일본인의 속성에 대해서는 다산이 오래 전에 명확하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전 세계인이 찬탄하는 일본의 민족성을 다산은 또 나름대로 진단해 내는 혜안이 있었습니다. 다산의 「일본론Ⅰ· Ⅱ」의 짤막한 논문을 이런 때에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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