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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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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각화사 월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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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삼층석탑. 보주는 근세에 보완한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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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삼층석탑의 기단부는 훼손이 심하여 원형을 알수없으나 면석의 탱주와 우주가
희미하게 보일뿐, 지대석과 하대석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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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루권역의 승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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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각화사 대웅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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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원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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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태백선원 「눈푸른 납자들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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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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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각화사 산령각 「 내부에는 삼성탱화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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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각화사 산신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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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귀부 @ 고려시대의 비의 비좌로 사료되는 귀부에 근세의 사적비와 이수가 올려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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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좌인 귀부의 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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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입속에는 혀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여 생동감이 ...석조귀부에서 혀는 처음보는지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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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갑문양속에 만(卍) 왕(王) 字를 양각하여 주인공의 품위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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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체에 비해 꼬리가 작지만 꼬리를 왼쪽으로 틀어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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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발.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를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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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에 주둔하셨던 고승대덕들의 부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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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대현대사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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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김상국 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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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각화사 노거수. 큰 고통을 이겨내며 깊은 사랑의 결실을 맺은 노거수
태백산 각화사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599번지
각화사는 686년(신라 신문왕 6) 원효대사가 지금의 춘양고등학교 교정에 있어었던 남화사
대신에 새로 사찰을 세웠는데, 옛 절을 생각한다 하여 각화사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밖의 사적은 전혀 전하는 바가 없고, 창건 뒤 어느 때인가 소실되었으며
고려 16代 예종(1105~1122)때 계응(戒應)스님이 중건했다.
조선시대 때는 태백산 사고의 수호사찰이었다. 현재 태백산 사고는 불타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부서진 기왓장과 축대만이 들풀 속에 흩어져 있다.
사고에 보관되어있던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다.
각화사는 눈푸른 납자 스님들이 안거에 들기위해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어 화두를 들고.......
○태백산 사고지(太白山 史庫地)
각화사 서북쪽 약 1km 지점에 있으며 조선시대 5대(오대산·마니산·적상산·춘추관·태백산)사고 중
하나로 이곳은 삼재불입지 (풍, 수, 화)로서 1606년(선조 39) ~ 1906년(순종 1) 약 300년 동안
조성왕조실록이 보관되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1907년 일제에 의해 서울 규장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사고건물은 일제식민지 시대에 각화사와 같이 소실되어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그 터와 흔적만
남아있는데 사고지복원을 반대한다는 글귀가 경 한곳에 보이는데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각화사 귀부(覺華寺 龜趺) 경북유형문화재 제189호.
고려 전기의 문신 김심언(金審言)이 세운 통진대사비(通眞大師碑)로 알려져 있다.
거북이 등 어깨부위에는 길게 깨어져 금이간 상태로서 몸체는 매우 통통한 딱닥한 거북이 모습인데
용머리가 다소 작은 편이나 입안에 혀가 살아 움직이는듯 생동감이 있다.
거북이등의 귀갑문 안에 왕(王)자와 만(卍)자를 이어가며 양각을 하고
아주 짧은꼬리를 왼쪽으로 틀었으며. 역동적인 발가락에는 물갈퀴가 뚜렸하다.
1984년에 만든 각화사기적비신과 이수(螭首)가 안타갑게도 이 대좌 위에 올려져있다.
○각화사 부도군(浮屠群).
구암당.대현대사.환허당등 조선시대 부도 10구와 근세의 부도 1구 등이 군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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