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이야기는 저희 8대조 조부이신 故默翁어르신의
독실한 행실을 당시 牧士골 능주에서 능주목사
韓致肇(한치조)를 위시해 당시 내로라는 인물들이
회합(오늘날 시장군수 청와대 비서)에서 묵옹님 기리고
撰하며 碣銘(비문을)각자 보증하고 찬하는 것중 다산선생
갈명을 유추 해보았는데...
贈童家敎官 朝奉大夫 默翁尹處士 墓誌銘
嘉慶辛酉 冬余謫 康津舍于 縣城東門之酒家
一日有逢 掖者數百人 咽于巷盈于庭其能
飮者飮而去旣 去余詢于 主瑥曰 何事瑥曰
花芳山下有 尹處士 者孝子也又高貨 善於客族
雖離者如禮 大賓匈者咸悅 號之曰 湖南夫子
鄕中諸士余印于官將報于 察司達于 朝廷
是其事也後 數年余목花芳山 以馬如僕 留于
山下及歸問之曰 得無飢采僕曰 尹處士 召我
問騎者爲 誰旣對以實飯芻有加焉後 數年余
徙茶山後 數年公字子 ()說衾一卷 至曰是惟
我先人之狀 圖所以不朽 於後按狀 公諱周顯
字德隱夢有 神錫號曰默翁 其先 海南縣人至
弘文館學士 橘亭尹衢門戶 始大橘亭 叔父有
進士孝義 其子衛參奉其子世佐 縣監其子容
縣監其子有二曰 判官益慶萬曆 丁酉倭寇
再躪倡義沒령軍其兄曰 郡守履慶前此 爲
楊根郡守亦沒령戰判官之子 都事東老當崇禎
嘉慶二十年 乙亥季秋 承旨열水 丁若鏞撰
분량이 아직도 윗글소개한것 보다 많아 부득이 이쯤해서
제일부로 예단 하고 차후시간이 주어지면은 제2부로
마무리 하겠읍니다
한글로 표시한 령자는 나무령인데 컴에 미표기
참고로 이글유추는 원본인지 사본인지 확인안된 저의선친
유물인데요 원본이라면 이백년쯤 책자로 기록이되고요
제가윗글내용 팔할쯤 해석가능 으로 완전치못한 주해로
인해 자손으로 좀 그러고해서 어떤분이라도 윗글 해석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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