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성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
금장태(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부·귀·공·명(富貴功名)이야 누구나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주위에는 높은 지위의 지도층 인사들이 더 많은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챙기는 일이 허다하고, 그 죄상이 발각된 후에도 후안무치하게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다가 명성을 여지없이 더럽히고 마는 사람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위를 얻으면 재물이 따라온다는 믿음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공적이나 명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장식물쯤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옛 선비들은 가치관이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 재물(富)이나 지위(貴)는 자신을 탐욕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 쉬운 속된 것으로 여겨 경계하였다. 이와 더불어 세상을 위해 어떤 공적(功)을 세울 것인지를 중시하고, 이보다 더 자신의 명성(名)을 당당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일을 생명만큼이나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비록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며 아무 지위 없이 베옷을 입고 사는 선비도 예의를 존중하며 명예를 소중히 여겼다.
실천도 없이 공허한 이론으로 명성만 쫓아서야
옛 선비들이 ‘명성’을 너무 소중히 여기다보니, 여기도 문제가 있어서 논쟁이 벌어졌던 일이 있었다. 조선시대 퇴계가 기대승(高峯 奇大升)과 성리설 논쟁을 벌이면서 퇴계의 제자들 사이에서 고답적 철학논쟁의 학풍이 일어나 이로 인해 명성을 얻은 인물들이 등장하였다. 이때 퇴계와 더불어 당시 영남지역의 학풍을 이끌어가던 양대 축이었던 남명(南冥 曹植)이 퇴계에게 진지하게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던 일이 있었다.
남명은 퇴계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즈음 배우는 자들을 보니, 손으로 물 뿌리고 마당 쓰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여 명성을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라 하였다. 곧 일상생활에서 사람 도리를 실천하지 못하면서 공허한 이론으로 헛된 명성을 얻는 것은 남을 속이는 짓이라 비판한 것이요, 퇴계에게 성리설을 토론하며 큰 소리를 내고 있는 제자들의 풍조를 단속하도록 요구하였던 것이다. 인격적 실천도 없고 사회적 책임감도 없이 관념적 이론으로 얻어지는 명성을 탐닉하는 학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으니,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퇴계는 이 편지를 받고 남명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른바 ‘배우는 자가 명성을 훔치고 세상을 속인다’는 논의는 그대만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근심하고 있습니다.…일체 꾸짖어 그만두게 한다면, 이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을 내려 베풀어주신 뜻에 어긋나고 천하 사람들이 ‘도’를 지향하는 길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어찌 일률적으로 세상을 속이며 명성을 훔친다고 몰아서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박하였다. 곧 ‘도’를 밝히면서 비록 헛된 명성을 추구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도’에 나아가는 길을 막는 더 큰 폐단을 일으킬 수 있음을 지적하여, 학자의 학문적 토론이 관념적인 데로 흘러가더라도 막으려고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변호하였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퇴계가 남명에게 보낸 답장에서 “‘배우는 자가 명성을 훔치고 세상을 속인다’는 논의는 그대만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근심하고 있습니다”라는 한 대목을 읽고서 깊이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다산은 ‘세상을 속이고 명성을 훔친다’는 비난을 가볍게 쏟아놓으면 천하의 사람을 악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깊이 경계하였다. 곧 “반드시 술주정이나 하고 욕설이나 하며, 음란한 짓을 하고 버릇없이 굴거나, 말씨가 패악하고 재물을 탐내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염치가 없어진 뒤에야 바야흐로 ‘명성을 좋아한다’는 말을 잘 면할 수 있다”고 하여, 온갖 사악한 행동에 빠져든 인간들만이 ‘명성을 좋아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였다.
그래도 명성을 소중히 여겨 선으로 나아가게 해야
다산은 퇴계에 대해 학자들이 비록 온갖 병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배움에 뜻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포용하여 감화시키고 격려하여 함께 대도(大道)에 이르게 하는 큰 스승이었음을 거듭 칭송하고 있다. 그는 퇴계가 남명에게 보낸 이 답장을 읽은 감회를 밝히면서, “이 글을 여러 번 되풀이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기뻐서 뛰고 감탄하여 무릎을 치며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술회하였다. 다산이 퇴계의 이 편지 한 편에 얼마나 감동되었으면 기뻐서 뛰고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겠는가? 퇴계의 말씀 속에 담긴 포용정신은 다산 자신이 평소에 절실하게 찾고 있던 스승의 길이었고 그래서 더욱 감동했으리라 짐작된다.
‘헛된 명성을 좋아한다’(好名)거나 ‘명성을 훔친다’(盜名)고 비난만 한다면, 사람들은 명성을 내다버리고 탐욕에 빠져 온갖 추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게 된다는 것이 바로 다산이 강조하고자 한 대목이다. 명성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비록 그 명성에 진실성이 부족하더라도 선을 좋아하고 선으로 나아가려는 뜻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이 바로 하늘이 내려준 인간의 선한 성품을 따르는 것이라 본다. 인간은 명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삶을 명예롭게 하고자 할 때에 선으로 나아갈 수 있고, 하늘을 저버리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금장태
·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