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를 생각하며
강명관(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작년 11월 이집트를 다녀왔다. 피라미드와 아부심벨 신전 등 유적지는 수천 년 전의 인간이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정교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카이로의 오래된 시가지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도시는 매력적이었지만, 한켠에 궁핍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내에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진이었다.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뒤로부터 30년째 대통령이란다. 카이로의 궁핍이 그의 독재와 무관하다면 거짓말이 될 터이다.
궁핍과 독재의 긴 역사
불쑥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독재자의 역사란 생각이 들었다. 파라오까지 떠올릴 필요도 없다. 조선시대 왕을 떠올려 보자. 모든 땅, 모든 권력은 왕의 것이다. 왕의 말은 곧 법이다. 왕은 자식을 죽여도, 형과 아우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여느 백성의 목숨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조선시대의 왕은 대부분 성군도 아니고 폭군도 아니다. 그냥 그런 보통의 왕이다. 하지만 그는 독재하는 왕이다. 대개의 왕은 학문도 인품도 정치적 능력도 없는 인간들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왕의 맏아들로 태어났거나, 어쩌다가 핏줄이 가깝다 하여 왕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왕위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왕이다. 연산군처럼 별난 폭군이 아니라면, 평생 왕 노릇 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왕이 무능하여 초래한 전쟁에서 수많은 백성이 죽어도 왕은 책임이 없다. 왕이 탐학(貪虐)한 신하들을 방치해서 그들이 백성의 거죽을 벗기고, 백성이 주려 죽어도 왕은 비난조차 받지 않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상소문에서 성심(聖心)을 닦으라, 요순(堯舜)을 본받으라고 했던 것도 왕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권력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왕에게 윤리적 인간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그냥 그런 인간이 절대권력을 쥐었는데,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귓등으로 흘러 들은들 누가 무어라 할 것인가.
조선시대 지식인 중 제왕의 독재에 깊이 생각한 사람은 아마 다산이 유일한 것 같다. 알려져 있다시피 다산은 「탕론(湯論)」에서 백성들이 마을의 대표를 뽑고, 그 대표가 모여 차츰 더 큰 단위의 장을 뽑는 식으로 하여 마침내 천자를 뽑았던 한(漢)나라 이전을 떠올린다. 제왕이 하늘이 낸 존재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선택된 존재라는 다산의 주장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를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있기에 매우 파격적이고, 또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다산의 주장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유사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하는 21세기에도 독재자는 즐비하다. 또 오랜 기간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다 해도 독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선거와 같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잡고, 또 법에 정한 기간 동안만 집권한다 해도, 법과 제도를 방패삼아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독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다는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법과 제도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고 제 패거리가 권력을 계속 차지하게 만들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독재는 지구상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
젊은 날 읽었던『구약성서』의 한 부분이 문득 생각이 난다.「사무엘상」에 나오는 말이다. 자신들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는 이스라엘의 장로의 청에 대해 사무엘은 야훼의 말을 전해 준다. “너희를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하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 …… 그는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가 거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 그는 또 너희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그때에야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때에 주께서는 너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문제는 왕의 독재가 아니라, 왕이 움켜쥔 권력 자체의 제도적 존재에 있을 것이다.「사무엘상」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무바라크는 축출될 것이지만 무바라크가 움켜쥐었던 권력을 만든 그 제도는 민주주의란 호사스런 휘장 뒤에서 아마도 계속 제왕을 만들어낼 것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