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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현 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브라질은 미래의 나라이다. 그러나 항상 미래의 나라로 남을 것이다”라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광활한 영토와 풍성한 자원을 지닌 브라질이 이제껏 강대국이 되지 못한 배경에는 미래의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과거의 한계에 잡혀있는 브라질 자신의 모순을 꼬집은 얘기다.
브라질을 잘 이끈 룰라의 성공 비결
이러한 브라질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우뚝 섰다. 돌아보면, 1960년대 쿠데타의 악순환아래 군복입은 현역 장성들이 대통령을 돌아가며 했던 나라. 우리와 비교해 국가 중심의 조합주의(corporatism)로 인해 민주주의의 개화를 예견하기 어려웠었다. 2000년대 초까지도 대다수 국민은 빈곤 그리고 국가는 외채에 빠져 IMF로부터 지원없이 살아가기 힘들었던 브라질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서 BRICs의 핵심 국가로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두 번에 걸친 대통령에서 물러난 룰라 덕분이다. 2003년 세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그가 무려 80%이상의 국민적 지지아래 평민으로 돌아갔다. 4년 쉬었다가 한 번 더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아니오”라고 확고하게 답한다. 룰라의 당선은 카르도조 정권의 실정에 대한 ‘거부의 투표’ 덕분이었다. 세계 투기자본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룰라는 곧 디폴트”라고 선동하면서 그의 등장을 막으려 했다. 룰라를 세계를 뒤흔들 좌파 혁명가로 본 것이었다.
룰라가 취임할 당시 브라질의 국가신인도는 벼랑 끝에 밀려 있었다. 카르도조 집권 8년 동안 늘어난 무려 2,500억 달라에 달하는 외채를 갚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지난 8년간 연평균 4%의 성장을 기록하면서 브라질은 채무국의 딱지를 때고 채권국으로 바뀌었다. 일자리가 1,500만개나 늘어났다. 밑바닥 하위 10% 인구가 약 60%의 소득증가를 기록했다. 극빈층이 줄고 중산층이 늘어났다. 기아퇴치를 위해 “포미 제로” 그리고 저소득층 생계지원을 위해 “불사 파밀리아”와 같은 정책의 효과 덕택이다.
우리의 경우 룰라는 노무현 그리고 카르도조는 김대중에 비교될 수 있다. 카르도조와 김대중은 가방끈의 차이를 넘어 박학다식한 점에서 비슷하다.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지만, 카르도조는 종속이론가로서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고 김대중은 직업정치인답게 위기극복에 앞장섰었다. 노무현과 룰라는 출신과 성장 배경에서 공유하는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으면서, 노무현은 인권변호사로 노동운동을 도왔고 룰라는 선반공으로 철강노조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애초의 기대와 달리 시장친화적인 신자유주의 발전정책과 타협했다.
그러나 룰라는 국정운영의 기본 틀이 있었다. 노무현이 홍(紅)과 전(專)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실기를 했다면, 룰라는 그 두 가지를 보완하면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다. 물론 룰라는 노동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노조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개진할 수 있는 자유도가 있었고, 노동자당도 자폐적인 사회주의 정당이라기보다 세계의 변화를 읽는 정책적 개방성과 유연성을 지녔다.
우리 정당, 이념의 바탕을 갖고 정책으로 승부해야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접고, ‘연대’와 ‘성장’ 그리고 ‘약자보호’와 ‘대외개방’을 동시에 중시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한 바 있다. 룰라는 노동자당의 다수파를 설득하여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중도실용의 개혁 방향아래 기득권 세력이라 할 금융과 대재벌 세력을 제외하고 내수기업인, 수출기업인, 노동자, 농민을 엮는 생산자동맹을 만들어 ‘사회운동’과 ‘금융시장’의 조화를 꾀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룰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는 맑스, 레닌, 트로츠키의 상징을 버리고 노동자당을 이끌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중 정체성을 밝히라는 전통 좌파들의 요구에, 그는 “나는 금속노동자일 뿐이다”라고 응수했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기본색도 약하지만 정책이 취약하다. 모름지기 정당은 정책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라고 하지만 여야정당들은 모두 고만고만하다. 진정 이념적 바탕색을 갖고 정책적 논쟁을 하면서 우리의 현안인 남북관계, 성장동력, 양극화, 일자리, 복지 등을 논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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