ː 봄이 부르는 소리따라 떠나 본 여행 (섬진강변과 남원 혼불 문학관) ː
삼월 중순 예년
이맘때 쯤 길을 나서면
누덕누덕 기운 옷처럼 군데군데 남아 있는
빛바랜 잔설(殘雪)들이
봄은
아직 멀리 있다 하였는데
올 봄은 벌써
황량한
들판에도 앙상한 나목(裸木)에도
연두빛 물을 들이고 있었다.
살랑 살랑 불어 주는
봄바람에
마음은 왜 이리도 설레이는지...
무덤덤하고 항상 그저 그래
더욱 허한 가슴에
그래도 꺼지지않은 불씨 하나
있었나보다.
도심을 벗어날 때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연무(煙霧)가
온
세상을 회색빛 베일로 덮을 즈음
차창 멀리 산마루에 아물아물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
아슴프레한 기억속, 올망졸망한 보따리에 쌓인
추억들을 하나, 둘 생각키운다.
눈물 나도록 그리운 것들이여....
새파랗게 젊은 나이
나의 봄은 늘상 싱그럽고 활기차며
세레나데처럼
감미로웠건만...
이제는 봄몸살과 꽃멀미로
부대끼는
이들과 동무해도 될 성 싶다.
떨어진 빗방울이 북으로 흐르면 금강
남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
수분령(水分嶺)고개를 넘어
남원과 구례의 경계에 있는 밤재터널을 빠져 나오면
지리산 끝자락
작은 마을 마을마다
노랑나비가 무리져
앉아 있듯이
곱게 피어있는 산수유꽃들
산수유꽃들의 환호 소리를
뒤로하고
벚나무가 한껏 부풀은 꽃망울을 달고
길
양옆으로 빼곡이 서있는 화개를 지나
섬진강변
매화마을로 갔다.
섬진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만개한 하얀 매화꽃들로 가득차
있다.
내가 지금껏 봐왔던 매화꽃은
어쩌다 큰 가지에 서 너개씩 피어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고상하면서도
고고한 자태로 서있어
시를 한 수 읊을 줄
알던가
창을 한자락
하던가 그도저도 아니면
가야금이라 탓 줄 알아야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나는
주눅이 들어 늘 곁 눈질로 감상하곤
했었는데...
함박눈을 쏟아 부은 듯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하얀 매화꽃에선
포근하고 다정함이
느껴진다.
바람에 매화꽃 향기
날리고
작은 황금 왕관 모양의 산수유꽃이
그리움처럼 피어나는
곳에
미련 남기며 뉘엿뉘엿 지는해를 따라
최명희 혼불 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엷은 어둠이 깔린 뜰
키 큰 소나무 가지에 걸린 새집이
유난히도 외로워
보이고
요절한 작가의 빈 자리가 더욱 공허하다
"강모"와 '강실"의
이룰 수없는 사랑도 슬프고
홀로 남아 쓰러져 가는 종가를 지켜내려는
효원의
안깐힘도 눈물겹고...
"인간은 그림자와 비극을
숙명적으로 타고난다"는
이의 말을 실감나게 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만 가려서 보는
단순하고 무식한 요즘의 나에게
한 때는 머리에
남는 책을 밤새워 읽던 날도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혼불문학관을 나섰다.
돌아 오는 길
어느새 눅눅하고도
포근한 봄밤이 시작되고
달리는 차창엔
너럭바위밑
계곡물에 피어있던
버들강아지의 화사한 미소가
안개처럼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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