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시 되돌아보는 5.16과 박정희 [임현진]

문근영 2011. 5. 29. 07:08

제 545 호
다시 되돌아보는 5.16과 박정희
임현진(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올해로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반세기가 되었다. 우리 헌법은 이미 5.16을 더 이상 군사혁명이 아니라 군사정변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4.19 학생혁명으로 태어난 민주적 합헌정부를 뒤집어엎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박정희 정권은 분명 정당성을 결여하였으나 이를 경제성장을 통한 효율성으로 만회하려 한 특징을 지닌다.

실상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정권은 매우 중요한 정치사적·경제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을 통해 등장하여,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초(超)권위주의적 정치체제로 거듭났고, 1979년 10월 26일 붕괴하기까지 장장 19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하였다. 해방이후 거의 칠십 성상에 달하는 현대사 중 거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박정희 정권의 역사적 의미는, 개발독재아래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독재정권의 폭압적 성격이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길러주었다는 양가적인 평가를 받는 점이  흥미롭고 중요하다.

개발독재와 남북대결의 경향은 박정희 정권의 유산     

특히 박정희 정권의 유산은 작금의 민주화 이후(post-democratization) 시대에도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단지 5․16 군사정변의 후예들이 사회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의 ‘조국근대화’의 이념을 구성하는 ‘발전’, ‘종속’, ‘반공’, ‘국가’, ‘성장’이라는 언술들이 민주주의의 심화 과정에서 여전히 하나의 족쇄 내지 갈등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라는 미명아래 민주주의를 능멸했고,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국민동원을 시도했으며, 민족주의라는 이름아래 남북긴장을 유발시켰으며, 그리고 국가발전이라는 목적아래 대외종속을 자초했던 것 등에서 우리는 박정희 정권 시기의 발전 역학과 모순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의 죽음과 더불어 그가 만든 유신체제는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했지만, 광주민주항쟁을 거쳐 제5공화국이라는 또 다른 권위주의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차후 문민정부가 연속적으로 출현한 이후에도 현실정치의 중심요소로서 자주 출몰하여 왔다. 사실상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그 승계자들에 의해 정신과 체험이 이어지면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유령이 오늘날에도 배회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남긴 이율배반적 유제의 결과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시각에서 볼 때, 한국은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빨리 이루었지만,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지체된 채 김영삼 정권·김대중 정권·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부분적 제도화’에 머물렀던 것도 박정희 정권이 남긴 정치경제적 유산의 끈질긴 존속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오늘의 한국은 두 차례에 걸친 여야 사이의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이명박 정권이 중시하는 개발독재식 성장과 반공주의적 안보에서 볼 수 있듯이 박정희 시대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 않다고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이 앞으로 형식과 실질을 고루 갖춘 민주주의의 심화해가는 길에서 아직도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19년’이라는 역사적 하중이 버겁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내가 어릴 때 자주 듣던 얘기 중의 하나가 "우리는 조국근대화의 사명을 타고 태어났다"라는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을 통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논리에 매료된 박정희는 한국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우뚝 서기 위해서 '조국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정희는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에게서 역사를 거역하는 반항심과 동시에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조국근대화를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란 이상은 유보되어야 하며 환경과 복지는 사치스러운 가치라고 보았다. 헌정질서조차 무너지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화주의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우리 국민은 근대적인 공화국의 '시민'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군주국의 '신민'처럼 기본권조차 누리기 어려웠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아진다.

여전히 분단 극복과 민주주의 내실의 과제를

역사는 단절보다 연속이다. 계기는 지워지면서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요즘 일부 논자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역사를 건국,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선진화라는 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요약하는 장점은 있지만 눌리고 터지면서 쌓이는 역사발전의 경험은 잃을 수 있는 약점도 있다. 과거의 연장으로서 현재가 존재하듯이 한국의 역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경제발전, 민족통일, 민주주의, 복지사회 등의 제반 가치가 각축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는 매우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되어 왔다. 역사의 단축으로 불릴 만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줄기차게 달려왔다. 비록 한국이 개도국의 성공사례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분단을 넘어 통일된 국민국가아래 민주주의의 내실을 다지고 자아충전적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실정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임현진
· 서울대 사회학과교수
· 한국정치사회학회 회장
· 아시아연구소 소장
· 저서 : <다산시선> 
           <한국의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북한의 체제전환과 사회정책의 과제> 
           <21세기 통일한국을 위한 모색> 등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