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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정희 정권의 유산은 작금의 민주화 이후(post-democratization) 시대에도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단지 5․16 군사정변의 후예들이 사회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의 ‘조국근대화’의 이념을 구성하는 ‘발전’, ‘종속’, ‘반공’, ‘국가’, ‘성장’이라는 언술들이 민주주의의 심화 과정에서 여전히 하나의 족쇄 내지 갈등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라는 미명아래 민주주의를 능멸했고,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국민동원을 시도했으며, 민족주의라는 이름아래 남북긴장을 유발시켰으며, 그리고 국가발전이라는 목적아래 대외종속을 자초했던 것 등에서 우리는 박정희 정권 시기의 발전 역학과 모순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의 죽음과 더불어 그가 만든 유신체제는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했지만, 광주민주항쟁을 거쳐 제5공화국이라는 또 다른 권위주의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차후 문민정부가 연속적으로 출현한 이후에도 현실정치의 중심요소로서 자주 출몰하여 왔다. 사실상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그 승계자들에 의해 정신과 체험이 이어지면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유령이 오늘날에도 배회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남긴 이율배반적 유제의 결과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시각에서 볼 때, 한국은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빨리 이루었지만,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지체된 채 김영삼 정권·김대중 정권·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부분적 제도화’에 머물렀던 것도 박정희 정권이 남긴 정치경제적 유산의 끈질긴 존속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오늘의 한국은 두 차례에 걸친 여야 사이의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이명박 정권이 중시하는 개발독재식 성장과 반공주의적 안보에서 볼 수 있듯이 박정희 시대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 않다고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이 앞으로 형식과 실질을 고루 갖춘 민주주의의 심화해가는 길에서 아직도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19년’이라는 역사적 하중이 버겁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내가 어릴 때 자주 듣던 얘기 중의 하나가 "우리는 조국근대화의 사명을 타고 태어났다"라는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을 통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논리에 매료된 박정희는 한국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우뚝 서기 위해서 '조국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정희는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에게서 역사를 거역하는 반항심과 동시에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조국근대화를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이란 이상은 유보되어야 하며 환경과 복지는 사치스러운 가치라고 보았다. 헌정질서조차 무너지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화주의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우리 국민은 근대적인 공화국의 '시민'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군주국의 '신민'처럼 기본권조차 누리기 어려웠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