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Re:싸리꽃,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진홍빛 전령

문근영 2011. 4. 2. 09:08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진홍빛 전령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우리 산야에 마치 배경처럼 피고 지는 그런 나무.
바로 싸리가 아닐까 싶다.
늘어진 가지에 물들 듯 피어 나는 싸리꽃이 피기 시작하는 때가 돌아오고 있다.

싸리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성의 키 작은 나무이다.
우리가 산에서 주로 만나는 싸리의 높이는 고작 2m를 넘지 못한다.
줄기에는 둥글고 귀여우면서 가운데 짧은 침이 돋아난 세 장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진 잎이 달리고 그 사이에서 붉은 꽃이 차례로 올라온다.

싸리 꽃은 여름의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피기 시작하여 가을 내내 잔잔하게 퍼지듯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데 간혹 찬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진분홍 빛 싸리 꽃은 아주 작지만 다른 콩과 식물들처럼 나비모양의
아름다운 꽃잎을 가진다.

싸리꽃은 눈에 금새 들어 올 만큼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숲에서 잎과 더불어
어우러져 그저 자연의 일부인듯 느껴지는 그런 꽃이다.

우리는 흔히 싸리라고 부르지만 사실 싸리의 종류는 아주 많다.
특히 참싸리는 싸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참싸리는 꽃차례가 짧아 잎보다 작은 반면 싸리는 잎 밖으로 화서가 더 길게 나온다.
역시 콩과이니만큼 열매도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작지만 꼬투리 모양을 하고 있다.

싸리가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 나무인지는 싸리골, 싸리재, 싸릿말 등 '싸리'라는
말이 붙은 지명이 전국에 지천으로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고개와 마을과 계곡들이 모두 싸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겠는가.

옛 사람들의 생활로 들어가면 싸리는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싸리를 베어 만든 싸릿문이 있다. 싸리는 또 흙벽의 심지가 되어주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담아 두고 말려두고 하는 소쿠리와 채반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중 바느질도구를 넣으면 반짇고리, 엿을 넣으면 엿고리가 되는 물건을 담아 두는
상자를 칭하는 고리는 싸리로 통을 엮고 여기에 종이나 헝겊을 붙여 만들었다고 한다.
농사지을 때 꼭필요한 삼태기, 술을 거를때 쓰던 용수라는 그릇,
본래 곡식을 고를 때 썼지만 오줌싸개 아이들이 소금을 얻으러 가며 쓰던 키,
곡물을 저장하는 채독, 병아리가 매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덮어씌우는 알까리,
고기를 잡던 발, 무엇보다도 군대생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싸리빗자루와
싸리줄기를 잘라 만든 가는 회초리.......

한방에서는 목형, 형조라고 하며 열을 내리고 이뇨 효과가 있어서
기침, 백일해, 오줌이 잘 나오지 않거나 임질에 걸렸을 때 썼고
꽃이 넉넉치 않은 시기엔 꿀이 풍부하여 훌륭한 밀원식물이 되며
새순이나 어린 잎 또는 꽃을 무쳐먹기도 한다.

숲이 우거진 탓인지 우리 마음이 싸리에서 떠나서 인지 요즈음은 흐드러진
싸리꽃 구경도 그리 수월치 않다. 싸리 꽃 찾아 아주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향기를 느끼며 올 여름을 떠나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유미>

 


싸리나무는 광주리, 바구니를 비롯한 생활용구에서 서당 훈장님의 회초리,
나아가서는 명궁으로 유명한 이태조의 화살대로 애용되는 등 옛 선조 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나무였다.

또 귀중한 쓰임새는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횃불의 재료이다.
요즘 TV의 역사극을 보면 기름 묻힌 솜뭉치 횃불이 등장한다.
그러나 들깨나 쉬나무 열매에서 어렵게 기름을 얻어 호롱불로나 간신히 사용하던
그 시절 늘 솜뭉치에 쓸만한 기름은 왕실이라 하더라도 조달이 가능하지 않았다.
소나무 관솔도 일부 사용하였을 것이나 싸리나무가 가장 보편적이었다.

성종이 죽자 연산 원년(1495) 장례절차를 논의하는 과정을 보면,
"발인할 때에, 도성에서 전곶까지는 사재감에서 싸리 횃불을 장만하여
노비에게 들리게 한다"하여 횃불의 재료로 궁중에서 널리 이용하였음을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훈련 나간 군인이 싸리나무를 모르면 생쌀 먹기가 일쑤였다.
싸리나무는 나무 속에 습기가 아주 적고 참나무에 막 먹을 만큼 단단하여
비 오는 날에 생나무를 꺾어서 불을 지펴도 잘 타며 화력이 강하고 연기마저 없으니
최첨단 군수물자이기도 하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도
싸리나무로 불지피는 공비들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어떤 연유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전국의 수많은 사찰에는 건물의 기둥을 비롯하여
구시(구유)와 목불(木佛)에 이르기까지 큰 나무유물이 싸리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승보종찰 송광사, 팔공산의 동화사 등 싸리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구시가 중생들의 눈길을 끈다.

오늘날 아무리 크게 자라도 사람 키 살짝인 작은 나무이지만 수 백년 수 천년 전에는
혹시 아름드리로 자란 것은 아닌가? 의심 많은 현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식물학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가능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구시를 비롯하여 싸리나무로 알려진 나무는 무슨 나무인가?
이 의문을 풀어보기 위하여 현미경으로 세포모양을 조사해 보았다.
예상대로 싸리나무가 아니라 실제로는 느티나무였다.

느티나무가 왜 싸리나무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어디까지나 추정이겠으나 느티나무의 재질이 사리함 등 불구(佛具)의 재료로
매우 적합하여 절에서도 흔히 사용한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사리함을 만드는데 쓰였든 느티나무를 처음에 사리(舍利)나무로 부르다가
발음이 비슷한 싸리나무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 박상진<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


옛날 왕자를 무척 따르던 로스페테라라는 예쁜 처녀가 있었는데,
그 당시는 평민이 왕자를 사랑하지 못하므로 그녀는 몰래 가슴만 태우면서
왕자를 기다리며 지냈다.

한 번은 이웃나라와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가장 믿던 장군의 배반으로
왕자는 홀로 도망쳐 왕의 사냥터에 숨었다. 이때 로스페테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이 산에 가서 왕자에게 바치고 싶었던 금반지며 금팔지를 묻은 싸리나무 밑에서
신께 기도를 드리려다가 의복이 찢긴채로 한 청년이 지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정심이 많은 로스페데는 그 청년을 조용히 깨워 포도주와 빵을 먹이고
상처를 씻어 주었는데, 그때 왕자의 무늬가 박힌 보석반지를 낀 손을 보았다.

로스페데는 그제야 그가 행방불명의 왕자인줄을 알았으나 모르는 체하고는
찢어진 옷을 꿰메고, 싸리나무 밑을 팠다. 그러나 숨겨 두었던 보물은
모두 노란 황금물로 녹아 있었다. 할 수 없이 로스페데는 거기서 돋아난
싸리가지를 꺽어드리며,

"왕자님 여기 지휘봉이 있으니 정신 차리고 나가 싸우세요." 라고 말했다.

이에 왕자는 용기를 얻어 싸리가지 지휘봉으로 처녀가 가지고 온 말을
타고 나가 싸워 크게 승리했다. 말을 타고 나간 왕자는 크게 승리했고,
나중에 물론 로스페데는 왕후가 되었다.

아직도 싸리나무 속이 노란것은 황금물로 자란 까닭이며,
싸리꽃의 좋은 향내는 지성의 처녀 로스페데의 몸의 향수 냄새라고 한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어사의 임무를 띠고 경산도 어느지방을 돌때였습니다.
칠흑같은 밤에 걱정을 하며 가다가 어느 외진 산속에 있는 집 한채를 발견하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두드리니 안주인이 남편은 출타중이고 방도 한칸뿐이니
외간 남정네를 재워 줄 수 없다며 어사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박문수는 이대로 가면 자신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애원하여
집안에 들었고 저녁밥을 얻어먹고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방이 한 칸인지라 치마로 방을 나누고 각각 누웠는데 박어사는 그만 그 아낙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여 엉큼한 마음을 품고 껴안으려 하였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남녀가 유별하여 할 수 없는 일을 워낙 사정이 딱하여 봐 주었는데
선비의 도리로 그럴 수 있느냐고 추상같이 호통을 치며 회초리를 만들어 오라 하였습니다.

그 위엄에 놀라 자신이 만들어 온 싸리 회초리에 박문수는 피가나도록 맞았고
그 여인은 그 상처에 맺힌 피를 명주로 감아주면서 부모에게 받은 피를 한방울이라도
소홀히 버려서는 안되니 이 피 묻은 명주를 가지고 다니다가 혹 다시 나쁜마음이
생기면 교훈으로 삼으라고 건네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세월이 흘러 박어사는 다시 낯선 집에서 하룻밤을 재워 줄 것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집 안주인이 박어사를 잘 대접하고 나더니
밤이되자 속옷 차림으로 방으로 찾아들었습니다. 박문수는 몇 달 전 회초리로 맞은
기억이 나서 벌떡 일어나 여인에게 호령하며 행실을 바로 하라고 꾸중하고
회초리를 꺽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난데없이 다락문이 열리고 무섭게 생긴
남자가 도끼를 들고 나와 박어사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자신은 그 여인의 남편으로서
부인의 행실이 나쁘다는 것을 눈치채고서 현장을 잡아 죽일 생각으로,
출타한다고 말해 놓고 다락에 숨어 있엇는데 이토록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분인 줄 모르고
해칠 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난날 그 싸리 회초리의 매서운 교훈이 없었다면
박문수는 많은 일을 하지 못하고 그때 허무하게 죽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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