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사지의 석재. 방형의 지대석위에 팔각중대석받침이 각형2단으로, 중대면석의 일부만이 있을뿐이다.
천관사지의 석탑부재들
천관사지에서의 재매정
사지 주변에 놓여져있는 주춧돌
천관사지에서 바라본 선도산
천관사지後 도당산
김유신이 장검으로 애마의 목을 친 모습이 그려져...
천관사지(天官寺址) 경북 경주시 교동 244
도당산 서쪽 기슭 마을 옆 논 가운데에 있는 절터로서 현재 석재와 기와조각들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전기에 있던 절로, 김유신과 천관이라는 기생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석탑재< 石塔材 >와 주춧돌이 있을뿐 전체적인 규모.배치. 건물내용들은 알 수 없다.
김유신< 金庾信 >이 어렸을 때 우연한 기회에 천관< 天官 >이라는 기생을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깊은 정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김유신은 하루의 수련이 끝나면 일과처럼 天官 의 집에 찾아가곤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유신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을 불러 "너는 장차 이 나라의 대들보가 되어
공명< 功名 >을 세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랐는데
너는 천한 기생과 사귀어 스스로 귀함을 버리니 웬일이냐" 하고 흐느껴 울었다.
유신은 엎드려 뉘우치고 어머니 앞에 맹세하기를 다시는 천관< 天官 >의 집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신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를 태운 말이 어느새 천관< 天官 >의 집앞에 멈추었다.
이때 천관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님을 보자 기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감회를 억누르고 문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게 하고 대장부의 결심을 헛되이 한 죄가 모두
말(馬 >)의 죄라며 말의 목을 벤 뒤 뒤로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오고 말았다.
그후 천관은 늘 유신을 사모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훗날 김유신장군은 사랑했던 옛 여인을 위하여
천관의 집터에 절을 세우고 천관사< 天官寺 >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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