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흘산과 가천리
우리나라 4대 섬이자 남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한려해상공원의 아름다운 섬, 봄이되면 마늘냄새가 코끝에 와 닫는 섬,
이순신장군의 노량대첩과 김만중의 유허지가 있는 섬, 해안 곳곳에 하얀 백사장과 마을 앞 방풍림이 바다를 두르고 있는 섬, 아직도 때 묻지 않는
청정해역이자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 바로 남해 섬이다.
이 남해 섬 끄트머리에 설흘산이 자리하고 있다. 설흘산은 몰라도 다랭이논 하면 ‘아하~!’ 할 가천리 뒷산이다. 가천리에서 보면
응봉산(매봉)과 설흘산이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천리 다랭이 논은 이 경사각이 심한 이 두 산 자락의 골에 터를 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가천 앞다에서 바라 본 설흘산
작은 산이지만 등산로는 의외로 여러 곳에 나있지만, 제대로 산을 타려면 선구리 사촌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안내판을 따라
솔숲이 우거진 완만한 산을 타고 오르면 이 산의 백미인 바위 등이 응봉산까지 이어진다. 또 다르게 매봉을 오르지 않고 설흘산으로 바로 오르는
코스도 있다.
그러나 힘들지 않고 두 봉우리를 모두 오르고 싶다면 주차장 부근의 등산로를 택하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코스이다.
안내판을 따라 비탈길을 타고 오르면 바위봉들이 아기자기하게 박혀 있다. 곳곳에 전망 좋은 곳이 많다. 바위턱에서 시원한 남해바다를 내려다보며
땀을 식히는 재미가 좋다. 바닷가 언덕위에는 외국풍의 펜션들이 놓여 있고 설흘산 아래는 가천 마을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바위 등을 몇 번 돌아
오르면 응봉산이다. 산은 봉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니 설흘산 매봉이 바른 것이 거늘 한사코 한자음을 빌어 응봉산이라 했다. 그래서 인지 정상석이
없는 채 삼각점과 이정표만 놓여 있다. 정상 돌탑 옆 좌판에서 팔고 있는 막걸리가 입맛을 돋운다. 남쪽으로 설흘산이 안개 속에서 풍신 좋게 서
있다.
응봉산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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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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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막걸리는 신선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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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에서 바라본 설흘산과 가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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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리 다랭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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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리막길이 끝난 지점부터 설흘산까지 2km는 평지 같이 부드러운 그늘 숲길이다. 설흘산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못
걸린다. 포실 포실한 흙길 따라 터널 같은 숲길에는 드문드문 산딸나무 꽃들이 환한 모습으로 반긴다. 짙푸름에 박힌 하얀 얼굴이란 언제 보아도
좋다. 그래서 여름 나무 꽃들은 흰색이 많은가 보다.
설흘산 가는 길은 부드러운 숲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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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산딸나무 꽃 (아름다운
십자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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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흘산에 오르면 우람한 봉수대가 앞을 막는다. 비좁은 정상에 온통 봉수대가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보수를 했는지 낯설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야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봉수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봉수대에 오르면 무망의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새해면 해돋이가 좋은 곳이다.
남해군에서는 '일출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 산'이라 내세우고 있다. 왼편 바다 끄트머리에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했던 노도가 동그라니
떠 있다. 시대를 잘 못 만난 천재의 한스런 유허지인 섬이다.
설흘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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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흘산에서 바라본 응봉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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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내려 가천리에 들른다. 가천리 하면 다랭이논이고 암수바위이며 맨발의 기봉이가 떠오른 곳이다. 그러나 다랭이논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나 보다. 100 계단이 넘는다는 논배미들 중 모를 담고 있는 것은 반도 못되고 나머지는 다른 작물을 심거나 공터이거나
건축물이 들어섰고 허드레 것들이 널브러진 채 버려져 있다. 그나마 이제 갓 심은 모를 안고 있는 다랭이논들이 바다를 향해 가파르게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한 뼘의 농토를 얻기 위해 천장논을 만들어 삶의 터전을 일구었을 그들의 강한 생명력 앞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가천리 다랭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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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심은 모가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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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담벼락엔 색 발한 맨발의 기봉이 포스터만 너불거리고 예전보다 더 많은 세월의 골이 파인 할머니는 담벼락의 서툰
광고문구(?)를 써 놓고 손님 오기만 기다린다. 돌담위의 마늘과 공터의 선혈 같은 페츄니아와 막걸리집의 파라솔이 어울리지 않는 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 지금의 가천리이다.
가천리 폐 분교에 들렀다. 아직도 이순신 장군 동상은 설흘산을 뒤로하고 남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삐걱거리는 마룻장이며 교무실
현황판이며 온통 낙서투성이인 교실 칠판들이 지난 날 배움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다. 가천리도 교육의 터전이 사라졌듯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갈 것이다.
폐교된 학교와 이순신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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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던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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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는 으뜸 덕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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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천리 앞바다에 내려 바닷바람에 피로를 날리고 되돌아 왔다. 남해군에서 설치했을 엉성하고 어울리지 않는 철 구조물을
보며 왜 사람들은 자연성을 마다하고 돈을 들여가며 볼상 사나운 짓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건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2007. 6. 15 For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