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타버린 화성 서장대(西將臺) / 박석무

문근영 2011. 2. 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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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버린 화성 서장대(西將臺)


이런 허망한 일도 있단 말인가요. 수원의 화성(華城), 그게 어떤 성입니까. 24년의 재위 기간 동안 정조대왕 자신의 지혜를 온통 짜내고, 신하들인 제제다사들의 학문과 지혜를 모두 합하고, 천재적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뛰어난 설계도와 축성법에 의해서 이룩된 화성! 그 화성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서장대가 타버렸다니 이런 뜻밖의 벼락이 있단 말입니까. 헐리는 광화문에 애도의 글을 썼던 일본인 어떤 사람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 견고함, 그 장엄함 등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찬란한 화성의 서장대가 20대 카드빚 놈팽이의 방화로 타버렸다니 이런 불행이 세상에 또 있을 수 있습니까. 불을 지르며 화풀이를 한다 해도 왜 하필이면 그 귀하고 값진 문화재인 서장대를 지목했다는 것입니까.

일명 화성장대인 서장대는 수원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수원성의 총지휘본부였습니다. 성안을 한눈에 훤히 볼 수 있고, 백리 안의 모든 동정을 살필 수 있어 총지휘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쇠뇌를 발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2층 누각으로 지은 서장대는 독특한 외양을 갖추고 있었고, ‘화성장대’라는 정조의 친필 편액도 있었으며, 뒤에는 노대, 옆에는 군무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누각만 남아 있었습니다. 1층은 3칸의 장방형 평면이고 모두 비어 있으며 바깥에는 기둥 12개를 세우고 팔모의 화강석 주초로 받쳤습니다. 안쪽 마루를 깐 높은 바닥에는 장수가 좌정하여 군사를 지휘하던 장소였습니다.

이른바 영·정시대 문예부흥기 학문과 예술의 총체적 결정판이 다름 아닌 화성이었고, 그 화성의 설계도와 축성법의 제작자가 바로 실학자 다산이었으니, 화성은 실학의 제왕인 정조와 실학자 다산의 분신이자 혼의 일부였습니다. 그런 화성, 그 중에서도 최상봉에 있던 대표적 건물인 서장대가 소실되었음은 문화와 예술의 소실이자 정조와 다산의 한쪽이 무너짐입니다.

하루빨리 복원해야 합니다. 방화자 망나니야 처벌을 면하지 못하겠지만, 그를 탓하기 전에 우선 복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하의 정조와 다산의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300회 기념 행사

박석무 이사장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가 4월 17일로 3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300회를 기념하는 작은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다산’ 또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 관해 여러분의 글을 5월 16일까지 보내주십시오.
어떠한 종류의 글이라도 좋습니다.

참여하신 분 가운데 약 30분을 추첨해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문학수첩, 2005)를 드립니다. 또한 앞으로『풀어쓰는 다산이야기』2권이 출간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글은 귀중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보내주실 곳
staff@edasan.org
팩스 02) 545-1694 (팩스로 보내실 경우, 성함과 이메일을 명기하여 주십시오.)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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