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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초적 열망 혹은 외관의 노예? / 김동춘 (성공회대)

문근영 2011. 2. 2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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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열망 혹은 외관의 노예?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지상에서는 피부를 희게 해주는 크림을 사용했다가 얼굴을 망친 태국 여인을 크게 소개한 바 있다. 현재 태국에서는 약 70종류의 불법 크림이 슈퍼나 약국에서 유통되는데, 이것을 바르면 서양 여성처럼 피부가 희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던 여성들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망가뜨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여성 10사람 중 4사람이 피부 표백 크림을 사용한다고 한다. 아시아 거의 모든 나라의 TV에서는 ‘완벽한 백색’을 강조하는 화장품 광고가 매일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거의 백인과 유사한 미인들이 등장하여 여성들의 관심을 끈다. 작년만 해도 아시아에는 62종의 새로운 피부표백제가 시장에 나왔다고 하는데, 의사들은 이 크림의 주요 성분인 하이드로퀴논은 피부에 대단히 유해하기 때문에 이러한 제품이 이렇게 널리 사용되는 것 자체가 ‘잠재적인 시한폭탄’과 같이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흰 피부와 높은 코, 위험스런 열망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도 ‘흰 것이 아름답다’는 신화가 아시아 여성들에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아시아 여성들의 유별난 성형수술 붐에 대해서는 「타임」지가 2002년도에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이미 많이 이야기 된 주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은 얼굴의 여러 부위 특히 코를 서양 여성처럼 높이는 일 등 외모를 서양여성처럼 보이게 하는데 지나칠 정도로 몰두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한국의 성형수술 기술은 ‘황금의 손’이라고까지 불려질 정도로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앞선 것은 코 수술이라고 한다. 한국 시장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미국 여성들도 코 수술을 많이 하고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코 수술을 많이 하려는 이유야 외모 특히 얼굴에서 코가 갖는 중요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시아 여성들은 좀 지나칠 정도로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피부를 더 희고 젊게 만들고 싶고, TV나 영화에 나오는 미인처럼 얼굴을 꾸미고 싶은 것은 여성들의 원초적인 열망이라고 치더라도 왜 아시아 여성들이 이렇게 흰 피부와 높은 코에 집착하는지는 좀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앞의 신문기사에서 인터뷰를 한 태국 여성은 “피부가 희게 되면 돈이 오고 남자가 온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고 있다. 즉 영화배우처럼 희게 된다면 자신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혼, 취업 등 모든 출세 기회에서 흰 피부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세속적 기대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에 틀림없다.

일찍이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베블렌(Veblen)은 흰 피부가 유한계급의 ‘기호’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하층민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흰 피부와 고운 손에 집착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아시아 여성들의 흰 피부, 높은 코에 대한 집착은 유한계급임을 과시하거나 유한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한 전략만은 아닌 것 같다. 흰 피부를 열망하고 코를 높이고자 하는 열망이 이렇게 강한 것은 단지 외모지상주의 때문만은 아니고, 서양 미인을 닮고 싶고 그들처럼 잘 살고 싶은 열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피부를 희게 만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바로 서양인화, 즉 흰 피부를 가진 서양 여성이 미의 표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빼고서는 설명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시아인들에게 서양인들은 곧 지배자요 권력자요 돈이 있는 사람이요, 서양의 것은 자신들이 쫓아야할 표준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것이 표준, 강한 자기부정은 식민성 아닌가

나는 앞의 기사를 보고나서 아이들 영어 발음 잘 하라고 자식 혀끝을 자른 강남의 어떤 젊은 엄마가 생각이 났다. 미국사람처럼 발음할 수 있다면 신체의 아주 중요한 부분까지도 망가뜨릴 준비가 되어있는 이 한국인들의 광적인 출세의 열망, 미국화의 열망이 떠올랐다. 나의 모든 정신과 육체, 심지어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라도, 출세에 장애가 된다면 가차없이 없애려는 이 강한 자기부정은 바로 과거 아시아 식민주의의 역사, 그리고 미국이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는 이 세상을 달리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파농(Fanon)은 검은 피부를 흰 피부로 바꾸려는 흑인들의 열망을 보고서 ‘외관의 노예’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자신의 주체를 부인당한 흑인들의 예속 상황이 정신적 예속을 낳았으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존재, 특히 생물학적 존재를 부인하고 백인을 닮고 싶어 하는 ‘가망없는 노력’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제국주의는 20세기의 유물만도 아니며,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시아 최고의 성형외과 천국인 지금 한국 땅에, 그리고 강남의 외과에 몰려들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냥 예뻐지기 위한 단순한 동기에서 표백제를 사용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까지 모두 싸잡아서 너무 심각하게 논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피부표백제 잘못 사용하다가 얼굴망치는 여성이 더 많이 나오기 이전에 한 번 쯤은 깊이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다.

“왜 흰 피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흰 피부와 높은 코는 과연 우리를 자유롭게, 행복하게, 그리고 부유하게 해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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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및 NGO 학과 교수
·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및 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
· 서울대 사범대와 동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음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2000-2001)
· 참여사회연구소장(2002)
· 저서 : 〈NGO란 무엇인가〉〈근대의 그늘〉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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